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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긍휼] 59약2;8-13 긍휼을 행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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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8-13 긍휼을 행해야 하는 이유_1

 

 2014.5.25..주일오전.

 

*개요:    65긍휼, 6서신서, 3분석, 4욕구-6결심

8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5월이 시작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의 마지막 주에 이르렀습니다. 이 한달 동안 우리는 가정의 달에 맞게 각각의 우리의 사랑의 대상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린이들과 자녀들을 보았습니다. 부모님과 부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승과 교회의 교사도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대상들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비록 그들을 대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들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들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서 정말로 우리 마음에 사랑이 모자랄 때에는 그 대신 긍휼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하게 여긴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신앙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으로 긍휼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낮게 여기고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높게 여겨서 긍휼히 여기는 것과 다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로서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긍휼이 더 수준높고 고귀하며 영원합니다. 긍휼을 통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긍휼을 통해서 주님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긍휼에는 명령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긍휼은 자기 마음에 근거하기 때문에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지만, 주님의 긍휼을 따르는 자들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있습니다. 또한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러한 긍휼의 명령을 지켜 행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긍휼에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스러움과 헌신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의 갖는 긍휼에는 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긍휼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의 의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8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기본적인 법입니다. 이 법에 의거해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법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완전한 법은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의 법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열 가지의 계명을 단 두 가지로 압축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장 최고의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은 십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가장 우월한 법이었습니다.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다 요약되고 나머지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로 다 정리가 됩니다.  그 계명들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이렇습니다.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6계명. 살인하지 말라, 7계명. 간음하지 말라, 8계명. 도적질하지 말라, 9계명 거짓증거하지 말라, 10계명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정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에 다 들어가 있는 일들입니다. 십계명의 내용들은 이웃을 사랑하면 절대 하지 않을 일들이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에는 그보다 더한 것들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행하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는 현대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늘 사용하는 주차구획에 누군가 차를 세워놓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기분이 상했지만 연락처를 남겨놓았겠지 하고 확인해보니 연락처가 없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오겠거니 했지만 1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그냥 차를 빼지 못하게 가로 막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습니다. 단단히 벼르고 나가봤는데 그 차 주인은 깍두기 머리를 한 험상궂은 아저씨였습니다. 급하게 마음이 가라앉고 친절하게 얼른 차를 빼준 다음에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지, 오늘도 그 사랑을 실천했다.’ 만약 험상궂은 아저씨가 아니라 연약해 보이는 아줌마였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리는 상대를 가리지 말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 상대는 때로 내가 아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나는 잘 모르지만 우리 가족이 잘 아는 사람 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족은 모르지만 앞으로 내가 어느 곳에서 만나게 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지 모릅니다. 그 사람은 과거의 나의 가까운 이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현재 이웃인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이웃이 될 지도 모릅니다. 오직 이웃을 사랑하려고 할 때에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 이웃사랑의 의미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자세히 가르쳐주십니다. 그 가르침이 구체적이고 자세한 이유는 정말 그대로 실천할 수 있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라는 말로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에 부족합니다. 좀더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길을 물어 보는데 그 사람이 대충 설명한다고 해보십시오. 그런 막연하고 추상적인 대답은 목적지를 찾는데 부족합니다. 하지만 정말 친절하고 정말 남을 도와주려는 사람은 아주 구체적으로 가르쳐 줄 것입니다. 심지어는 함께 그곳까지 가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늘 정말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야고보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진정한 이웃사랑의 방법은 긍휼이라는 것입니다. 13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긍휼을 행하는 이유는 우리도 하나님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긍휼을 행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긍휼이 있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긍휼의 심판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부족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용서를 얻게 됩니다. 심판을 받기는 하지만 그 용서 속에서 많은 부분 정말 엄격하게 심판받지 않고 용서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하나님의 긍휼하게 여기심이 가장 큽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지만 또한 긍휼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엄격하게 하려고 했으면 우리가 세세한 모든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말씀 그대로 긍휼없는 심판을 얻게 될 뿐입니다. 그로 인해서 심판 보다 더 큰 긍휼을 스스로 차버린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자기 스스로 긍휼을 차버렸을까요? 자기가 보았던 기준에는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엄격하게 하였을 때 그 자신도 충족시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엄격한 기준이란 항상 하나라도 미흡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절을 보십시오.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정말 엄격하게 하려면 모든 것에서 하나라도 거치면 모든 것을 범한 자가 되어버립니다. 십계명의 하나라도 어기는 자는 비록 다른 것을 잘 지켰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모든 것을 어긴 자와 똑같이 율법을 범한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든지 율법으로 자랑할 자가 없고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긍휼히 여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한번쯤은 그 죄를 짓고 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도 똑같이 대우를 받을 뿐입니다.

 

대학에 교수가 되기 위해서 교수채용공고에 지원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서류심사를 다 거치고 마지막 총장 면접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따라 무슨 사정에서인지 면접장소에 예상보다 늦게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면접장소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지하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는 누군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위층으로 가려는데 어떤 사람이 막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자기가 급하니까 기다리지 못하고 문을 닫는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그사람이 막 달려와서 정지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올라타니까 이 지원하신 분이 막 짜증을 냈습니다. 좀 기다려서 오지 왜 바쁜데 엘리베이터를 세우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올라갔는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엘리베이터에는 그 대학 총장님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하에서 올라오던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분이 바로 총장님이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분은 그래도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면접을 보았지만 그곳에서 총장님을 만났을 때 그는 얼굴을 들 수 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분은 교수임용면접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야박하게 했을까요?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대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놀라우신 긍휼하심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의의 율법대로 판단을 받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도저히 구원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해서였지 우리를 버릇고치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늘 은혜와 긍휼의 법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이루셨습니다. 만약 그러한 은혜의 법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죄와 사망의 법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다시는 율법에 따른 정죄함은 없습니다. 왜나하면 그리스도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우리가 받는 법은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그 법은 우리를 긍휼로 대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에 계시된 온전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오늘 말씀에서도 바로 그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그렇게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는 자로서 말하고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긍휼의 법으로 심판받을 자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게 긍휼히 여기는 심판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누리는 자입니다.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의 설립자인 하워드 켈리는 아주 큰 설탕도매사업가의 외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부러움 없이 자랐습니다. 하워드 켈리는 집안이 넉넉했는데도 불구하고, 대학 등록금을 아버지에게 의존하지 않고 모두 아르바이트로 벌 정도로 모범생이었습니다.

1880년 늦봄 어느 날. 하워드 켈리는 자전거로 시골을 돌아다니며 방문 판매를 하며 학비를 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너무 물건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배고픔에 지친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동전 한 닢. 아무리 둘러보아도 주위에는 자기 물건을 팔아줄만한 집이 보이지 않고, 아주 초라한 시골집 한 채만 눈에 띄였습니다. 그는 밥이라도 얻어 먹을 요량으로 그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문을 열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밥을 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물 한 컵만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녀는 켈리가 몹시 배고파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큰 잔에다 우유를 가득 담아 건네주었습니다. 켈리는 우유를 다 마신 후에 그녀에게 얼마를 드려야 할 지 물으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 주셔도 돼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늘 저에게 좋은 일을 하거든, 절대 댓가를 바라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녀의 작은 친절은 켈리로 하여금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었고, 또 사람에 대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더하게 했습니다. 이후 그는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마침내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고, 존스홉킨스 병원을 공동창립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십여년이 지난 후  켈리에게 우유컵 한 잔을 건넨 그 착한 여인은 안타깝게도 뱃속에 큰 혹이 생기는 병을 얻게 되었고, 치료를 위해 하워드 켈리가 있는 병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켈리는 그녀가 자신의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알고는 모든 힘을 다하여 그녀를 살려내겠다고 결심하였고, 많은 시간과 노력 끝에 마침내 그녀를 살려내었습니다. 마침내 퇴원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병을 치료한 그녀는 자신의 병이 치료된 것에 대한 기쁨보다 병원비 걱정이 더 컸습니다. 도대체 병원비가 얼마나 될까? 앞으로 평생을 벌어도 병원비를 값을 수나 있을까? 그런 걱정으로 그녀가 영수증을 열어 보자 그 영수증에 이런 글씨가 쓰여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당신의 치료비는 여러 해 전 우유 한 컵으로 모두 지불되었습니다.”

그 글 밑에는 하워드 켈리라는 서명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긍휼히 여기는 그 모습이 이 세상에서는 어쩌면 보답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보답되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설 것을 믿는다면 그 앞에서 우리가 행한 긍휼에 대해 하나님의 갚아주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반드시 긍휼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며 그 은혜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놀라운 마음을 통해서 긍휼의 기쁨으로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주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 받을 수 있는 삶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긍휼로 충만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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