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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실천] 43요 1; 1-7 빛되신 예수님과 그분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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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206-111427.mp3

(비디오는 중간에 끊어집니다.)

 

43 1; 1-7 빛되신 예수님과 그분의 사람들_1

 

 2015.12.6..주일오전

 

*개요:    그리스도의 빛되심, 5복음서, 1적용, 6결심,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계절인 12월이 되었습니다.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게되는 이 올해의 마지막 달에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예수님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항상 우리는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 예수님이 오셨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 보면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에 우리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알게 되고 믿게 되고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갖게 하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우리 중심으로만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으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게 되는 말씀의 묵상을 가져보기를 원합니다.

 

그 놀라운 발상의 전환의시작은 1절입니다.

“[]1:1   태초에 말씀이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에는 하나님이 천지를창조하셨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이해였지만 오늘 말씀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말씀은 존재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말씀은 헬라어로λόγος (logos) 입니다. 이는 말이나 혹은 가르침, 예언, 설명 등등을 의미합니다. 보통 철학에서 세계의 법칙이나 무형의 행위나원리를 의미하는 이 용어가 바로 성경에서는 복음의 내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의미하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는말은 전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해석하자면, ‘태초에예수님이 계셨고 이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애초부터 이해하기 쉽게 예수님이라고 하지 말씀이라고 했을까하면 예수님은 우리가 아는대로의 모습일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실 성육신하셔서 이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이땅에 오시기 그 이전의 모습을 상상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표현을 로고스’ ‘말씀이라고했던 것입니다. 또한 말씀이라는 것이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뜻을 우리에게 자연현상을통해서 혹은 선지자를 통해서 혹은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해주시기도 하셨지만 그것은 다 일시적인 하나님의 현현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아예 성자 하나님께서 이땅에내려오셔서 같이 사시면서 하나님을 알려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말씀이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알게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예수님을 다만육체대로의 예수님이 아니라 본체로서의 예수님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태초부터존재하신 성자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분에 대한 설명이 2절에서이어지고 있습니다.

“[]1:2   그가 태초에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그분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하심은 예수님의 존재하심과 동일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하나님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닙니다. 가장 동등하신분이십니다. 그것이 삼위일체 개념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예수님을 자신의 가장 사랑하신 아들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버지로 말씀하셨지만 그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우리가 아는 대로의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아닙니다. 친밀함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지 상하관계가 아닙니다. 그래서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신 것 만큼이나 예수님이영원하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이 행하신놀라운 일이 만물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만물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어졌다고 했습니다.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아까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고 연합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창조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만 이 세계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예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것도 아니고 하나님과 예수님이동등하게 함께 이 세계를 만드셨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찬양을 받으시고 영광을받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얼마전 국민연금에 대한 이런기사가 났습니다. 5년이상 함께 산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 3년내에배우자의 국민연금 수령액의 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는 법이 마련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할비율은 50%로 정했습니다. 백년해로하면서 오손도손함께 살면좋으련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이혼을 할 때에 배우자가 받게되는 국민연금 수령액을 반으로 나누어서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61세이후에만 청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이혼후 3년내에 미리 청구할 수 있게 법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법의해당조건이 이혼이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분할비율이 50%라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함께 고생하고 함께 일했고 함께 지냈기 때문에 그 수고가 동등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혼을 한 뒤로 함께 살아오고 함께 노력한 모든 삶의 가치는 단지 일부가 아닙니다. 정확히 50%가 되는 것입니다.

이혼할 때에는 그것을 반으로나누게 되지만 이혼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뉘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합쳐서 전부가 됩니다. 전부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수님의 창조는 두분이 나뉘시는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전부 함께 행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성령님까지 계시니 성부,성자,성령 세분이 모든 창조를 함께 공동으로 행하셨습니다. 그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천지창조에 대한 기여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과하나님과 성령님의 놀라운 창조의 가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창조하심의 반대속에 살아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항상 창조의 세계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그리고 소멸을 경험하게 될 때에 비로소 창조의 가치가 얼마나 놀라운것이었는가를 알게 됩니다.

삶속에서 사람들은 그냥 유지하고가지고만 있으려고 할 때에는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처분하고 정리하려고 할 때에는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됩니다. 집이나 땅도 평생 가지고 있으려고 하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그것을 처분하고 정리하려고 할 때에는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심판입니다.

우리 인생도 내가 다 사용하려고할 때에는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인생이 정리되고 종료될 때에는 그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생에서 나타나는 가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생에서얻게 되는 가치입니다. 이세상에서의 가치평가는 불확실합니다. 왜냐하면그 가치평가의 기준은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진정으로 처분하거나 정리된 것이 아닙니다. 그 인생이 정말로 끝이 나고 그 끝이 난 상태에서 그간의 모든 정황이 온전히 나타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가치가 정리되고 평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곳은 오직 저세상에서만이 가능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심판입니다. 애초에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이 끝나고 나면 저 세상에서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우리 사는 이 세상에서도창조의 개념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사실 완전한 창조의 개념은 아닙니다.오히려 개조의 개념이 더 강합니다. 하지만 창조라는 것을 상상해 보기 위해서 유사창조라는개념을 끌어다 쓸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유사창조의 개념으로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고 투자를하고 모든 것을 제공해 주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새로운 환경과 상황을 창조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심판의 개념을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다음에는 그로 인해서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가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그것은 정산, 감사, 평가등등으로 표현됩니다. 우리의 전체 인생에서 그 모든 심판을 행하시는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이 지났을 때 우리 모든 인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심판을 받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이 완전히 드러난 상태로 말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지금까지 저질렀던모든 일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내가 숨겨왔던 모든 일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앞에서는 그 어떤 일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그 모든 일에 대해서 심판하십니다. 이러한 이해가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이 이 세계의 끝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사실 맨처음부터 거기에 계셨습니다. 이 세계의 시작부터 주님은 존재하셨고 그 존재하시는 모든 역사속에서 우리 각자가 등장했다가 사라진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인간들이 우리 눈에는 사라졌을 뿐이지만 하나님 앞에는 다 존재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전부다 하나님 앞에 모여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인생을조명해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계의 창조자로서 존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자로서 존재하십니다. 빛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비추어 보여주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빛으로 조명해 주십니다. 4,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4   그 안에 생명이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5     빛이 어둠에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아까 보았던 말씀 안에 생명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사람들에게는 빛이었습니다. 그러면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생명이고 빛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말씀, 생명, ]이라는 의미관계가성립됩니다. 그 빛이 우리에게 비추어져서 우리를 비추시는 빛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이 세상의 시작과 종말을 알게 하셨습니다.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에 대해서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어둡고 캄캄한 삶에 예수님이 빛을비추어주신 것입니다. 태초에 존재하셨던 예수님이 2천년전이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두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빛으로 나타나시는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우리에게는창조가 있고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텐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이원래 있었고 원할 때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확고하게 믿는 것은 죽으면 다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살아가기 때문에 죽음 이후를 대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으면 다 사라진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올바르게죽음 이후를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현재의 삶속에서 내세의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신앙 속에서 우리에게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현재의 삶속에서 현재에 대한 신앙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내세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내세, 들리지 않는 내세, 만질 수 없는 내세를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그러한 내세를 볼 수 있는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 어두울 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빛이 비추어지니 놀라운 세계가 보였습니다. 소경의 삶속에 눈이 어두울 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소경의 눈을 예수님이 뜨게 하실 때에 모든 것이보였습니다. 내세가 인간에게는 어두움이지만 그 내세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비추어주시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놀랍게 보여지게 되었습니다. 현실의 삶속에서도 인간에게는 어두움이요 막막함이지만 예수님께서 빛을 비추어주시니그 삶속에서 커다란 소망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빛이 바로 우리에게 비추어진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이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있던 자는 세례요한이었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1:6   하나님께로부터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1:7     그가 증언하러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세례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고 그는 빛에 대해서 증언하여 자신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자였습니다. 지금도세례요한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음으로 그분을 그 자신이 믿고 다른 사람이 믿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누굴까요? 바로 우리들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우리는 결국 태초부터 존재하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이 시대에 태어나서 깨닫고 알고 믿고 그리고 그 예수님을 다른사람에게 믿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잘 하고 이 세상을 떠나면 저세상에가서 태초부터 존재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셨던 그 예수님을 만나서 위로를 받고 칭찬을 받고 상급을 받고 그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존재하는 자들이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먼저 오고 예수님이 나중에 오신 것이아닙니다. 예수님이 먼저 계셨고 우리가 나중에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이 세상에 태어나고 자라서 주님을 믿게된 우리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빛을 우리에게 비추심으로 우리가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을 우리의 미래, 우리의내세를 향해 비추십니다. 그 빛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알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주님을 믿게 해야 합니다. 이 두가지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의 영원에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것을 아는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셨습니다.

12월에 그 빛되는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그분의 생일을 기념하면서그분을 기억합니다. 그분을 기억하면서 그분의 빛을 나타내는 사람들인 우리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깨닫습니다. 마치 존경하는 스승님의 생일을 기념하여 맞이하여 모인 제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처럼사랑하는 우리의 구세주의 생일을 기념하면서 우리도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신앙의 위치를 다시금 깨닫고 더욱 주님의 빛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이 한달동안모든 시간 시간마다 풍성히 누리고 그리스도의 빛으로 충만해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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