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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선악] 45롬 1; 26-29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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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26-29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과 끝_1

  

 

  

2023. 10. 8. . 주일오전예배.

  

 

  

*개요: 로마서에서 성도를 세움, #선악

  

 

  

[]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성도가 생각해야 하는 선악의 분별에는 신앙의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단순히 좋은 것이 좋고 나쁜 것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좋고 나쁨과 선과 악의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좋고 나쁨과 선과 악에는 하나님의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걸 믿고 따를 때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되는 것이고 그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이 시간 우리는 성도가 선악의 기준으로서 하나님을 얼마나 생각하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럴 때 성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얼마나 삶의 기준이 되고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석의 비유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준이 되는가에 따라서 자력이 세기도 하고 자력이 약하기도 한 것입니다. 다음 구절을 보면서 나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의 영광을 추구하며 우상을 삼았을 때 그들을 자기 자신의 욕심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것이 선과 악 사이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이었습니다. 그 기준에 의해서 선의 결과와 악의 결과가 더욱 더 구체적으로 잘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과연 이러한 하나님의 기준을 따를 수 있는가 라는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셔서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게 하시는 것을 따를지 혹은 따르지 않을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준일 때 그렇게 하는 것이 악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한 결과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선악 사이의 판단 기준이었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욱 구체적인 선과 악에 대한 구분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선의 개념은 악에 대한 구별 속에서 생깁니다. 자기 자신의 우상과 부끄러운 욕심을 가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러낼 때 선이 나타납니다. 그 선함을 가지고 있을 때 성도는 하나님의 선에 대해서 더욱 이끌릴 수 있습니다. 올바른 선의 개념은 악의 결과를 직시하면서 선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비로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성도에게 천국의 개념이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악을 추구하지 않는 온전한 하나님의 선을 추구하는 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이상이 있기 때문에 그 천국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있었던 에덴동산에도 바로 그런 의미가 있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생명 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생명 나무는 하나님의 천국에서는 생명수의 강이 있고 그 좌우에 즐비하게 하게 있던 나무였습니다.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하나님의 나라에 생명 나무가 즐비했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 선을 온전히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일부에서만 선을 추구할 뿐이지만 천국에서는 모든 곳에서 선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 기준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에서의 축복을 받아들이고 사모할 때 바로 영원한 축복의 현장인 천국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으로 나아가는 선과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으로 나아가는 악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욕심에 이끌려 죄악의 결과를 경험하는 것은 심판의 시작일 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욕심을 추구할 때 마침내 영원한 심판에 이르게 되는 것은 심판의 끝입니다. 성도는 바로 그 끝을 받아들이는 자들입니다. 그러한 심판으로 나아가는 악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신 것은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서 자신의 상실한 마음대로 합당하지 못한 일을 행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다만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내버려진 것이며 그로 인해서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출애굽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했던 바로의 강퍅함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바로는 자신의 악함을 나타낸 것이고 그 악함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불의, 추악, 탐욕, 악의로 가득하여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을 행했고 수군수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죄악들이었습니다. 그런 죄악을 저지르면서 그들은 심판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 심판의 결정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악의 끝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악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세상에서의 심판이 실행되었고 그래도 회개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그 죄에 대해서 영원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죄에 대한 영원한 심판은 죽어서 지옥에서 받는 것이고 그 지옥의 심판을 이해하고 깨달으며 시인할 때에 성도에게는 악에 대한 확실한 개념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개념이 없는 악인은 심판으로 나아가지만 그런 개념이 있는 의인은 영원한 심판을 피하고 마음에 하나님을 모셔 들여서 마침내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심판의 반대가 바로 축복의 장소입니다. 상실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그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축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악인들의 모습은 계속 이어집니다.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하나님을 비방하고 하나님의 미움을 받고 능욕하고 교만하고 자랑하고 악을 도모하고 부모를 거역하는 자들이 바로 심판을 받는 자들입니다. 우매하고 약속을 어기고 무정하고 무자비한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면서 심판을 피하고 그 반대로 축복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됩니다.

  

다윗은 사울의 악함 속에서 하나님의 선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사울왕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사울왕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을 죽일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기준을 받게 하였고 사울은 자신의 죄로 인해서 결국은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 거기서 축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기준이 우리의 선과 악의 기준이 되고 거기서 더 나아갈 때 축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러한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로서 하나님이 심판의 시작이자 끝이요 축복의 시작이자 끝임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4극본적해석

  

1. 인간의 감사하지 않음과 스스로 높임은 부끄러운 욕심에 얽매이게 하였다.

  

2. 그 욕심의 결과로 질병이나 고통을 겪게 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의미였다.

  

3. 하지만 다시 하나님을 거부할 때 더욱 악을 행하게 되었다.

  

4. 하나님을 모실 때에만 선을 행할 수 있음을 기억하는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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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3-10-08 (일) 22:44 1년전
*소감
1. 선과 악을 잘 분별하고 하나님의 선을 잘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기준을 생각하며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3.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왜 하나님의 공의를 쫓으며 살아야 하는지 알겠습니다.
4. 세상과 인간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기도로 성찰하며 하나님 안에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하겠습니다.
5. 하나님의 기준을 생각하고 나의 선의 기준을 정해야겠다.
6. 성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7. 돌아보고 둘러 보아도 부끄러움이 많은 시간들이었음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을 선택하는 마음의 의지를 세워 나갈 수 있도록 항상 은혜 내려 주옵소서.
8. 하나님 안에서 서에 대한 구별을 잘하며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며 살아야겠다.
9.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 하나님께서 선하다 하신 것을 따르고 악하다 하신 것을 멀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의지하며 일상생활에 임하겠습니다.
11. 성도는 선악을 잘 구별해야 하는데 그 기준은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기준으로 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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