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성경에 보면 이름이 비슷하여 혼동을 일으킬 때가 더러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헤롯 왕이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헤롯 왕들이 동일 인물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확인해 보도록 하자. 먼저 성경 몇 곳을 찾아서 확인해보자.
1)마2:1이하 -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당시 유대 땅의 왕은 헤롯이었다.
2)마2:22 아켈라오 -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이 되었다. 그의 정확한 이름은 헤롯 아켈라오였다.
3)마14:1이하 - 예수님 공생애 시작 후 등장하는 분봉왕 헤롯. 세례요한의 목을 벰
4)눅3:1이하 -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이때 역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될 무렵, 세례요한의 등장 시기
5)행12:1이하 -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쌔 때는 무교절일이라. 이때는 이미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진 다음이다. 이때 등장한 헤롯왕은 누구인가? 이 헤롯왕은 얼마 후 충이 먹어 죽게 된다.
6)행25:13 - 아그립바 왕. 또 다른 유대인의 어떤 왕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헤롯왕과는 아무런 관련은 없는 것인가? 옛날에는 왕위를 아들에게 계승해 주었는데...
자, 이처럼 예수님 탄생 때부터 초대교회 시절까지 수십 년에 걸쳐 등장하는 헤롯왕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동일한 사람인가?
● 먼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헤롯 왕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가자. (* 아래 헤롯 가계도 참고)
※ 헤롯 안티파터 2세 : 비록 성경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헤롯 왕가를 설명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헤롯 안티파터 2세이다. 그는 이두메 출신(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의 토후로서 로마가 권력투쟁을 할 당시 줄리어스 시이저의 편에 가담하여 애굽에서 목숨을 걸고 시이저를 위해 싸웠다. 이런 연고로 시이저는 헤롯 안티파터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었으며 그를 유대의 행정장관(초대총독)으로 임명했다. 그는 유대땅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그의 장남 파사엘을 예루살렘 총독으로, 둘째 아들 헤롯을 갈릴리 총독으로 임명했다. 이리하여 향후 1세기 이상 지속된 헤롯 가문의 유대 통치의 기초를 마련한다.
이제 성경에 등장하는 헤롯왕들을 살펴보자.
1) 헤롯대왕(B.C.37-A.D.4) : 헤롯대왕으로 불리는 헤롯 안티파터의 둘째 아들 헤롯1세는 약관 25세의 젊은 나이에 갈릴리 총독으로 임명이 되어 상당한 역량을 발휘한다. 그러나 줄리어스 시이저가 암살되고 로마의 정황이 어수선할 때 그는 여러 시련을 겪다가 로마에 가서 옥타비아누스(후일 가이사 아구스도가 됨)로부터 환영을 받고 B.C.40년 원로원의 비준을 얻어 유대왕으로 지명된다. 하지만 그가 유대땅에 와서 정식으로 왕으로 등극한 것은 B.C.37년이었다. 그는 정통 유대인 혈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환심을 얻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헤롯이 로마에 대해 보인 과잉 충성은 로마에 대한 유대인의 적개심을 더욱 야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헤롯 왕가가 유대인들의 미움을 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헤롯대왕’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많은 업적을 쌓기도 했는데, 특히 여러 건축물들을 남겼다. 그중 가장 대표적이며 최고, 최대의 건축물이라 볼 수 있는 것은 B.C.20년 경에 시작된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유대인 랍비문헌에는 “헤롯의 성전을 보지 않은 사람은 아름다운 건축물을 결코 보지 못한 사람이다.”라는 글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외에도 헬라문화를 적극적으로 보급하였으며, 영토를 안정되게 통제하여 로마제국의 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통치 말년에는 열명의 왕비 사이에서 난 다섯 아들이 모두 왕위 쟁탈전에 휘말려 심각한 가정불화를 겪게 되는데, 그가 살아있는 동안 그의 아내는 물론 첫째, 둘째, 셋째 아들을 모두 처형했다. 결국 자신도 신경과민, 공포심으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헤롯대왕은 죽기 직전 유대인의 왕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온 동방박사들을 만났다.
2) 헤롯 아켈라오(B.C.4-A.D.6) : 헤롯대왕의 네 번째 아내 말다케의 소생으로 헤롯대왕 사후 유대와 사마리아, 이두매 지역의 분봉왕이 되었다. 아켈라오는 통치 시초부터 무자비하게 백성들을 다루었다. 유월절에 민중의 봉기를 막기 위해 군대를 보내여 3천명의 시위군중을 무차별 살육하기도 했다. 마2:22에 보면, 애굽으로 피신했던 요셉이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켈라오는 그의 아버지 헤롯과 마찬가지로 잔혹했고 불의를 일삼았다. 결국 A.D.6년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대표들이 아켈라오의 잔인하고 포학한 무단 정치에 대해 황제 아구스도에게 공식적으로 불평함으로써 아켈라오는 직위에서 면직되어 고울지방(지금의 프랑스)으로 추방당한다. 그가 다스리던 지역은 로마총독의 관할 하에 들어가게 된다.
3) 헤롯 안디바(B.C.4-A.D.39) : 역시 헤롯대왕의 네 번째 아내 말다케의 아들로, 헤롯대왕 사후 유대북쪽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이 되었다. 헤롯 아켈라오의 친동생으로, 아켈라오가 잔혹한 무단정치로 일찍 직위에서 쫓겨난 것에 비해, 안디바는 무려 43년이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갈릴리 지방을 통치한다. 안디바는 세례요한과 예수님께서 대부분 사역을 했던 갈릴리와 베레아 지방의 영주였기 때문에 신약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헤롯왕으로 등장한다.
그는 세례요한을 죽인 부도덕한 왕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 자신의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이자 조카였던 헤로디아와 재혼함으로써 세례요한의 질타를 받게 되었고, 세례요한을 죽일 핑계거리를 찾던 중 살로메의 청을 마지못해 들어주는 것처럼 꾸며 세례요한을 목베어 죽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판결 당시 그는 유월절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에 잠시 거주하고 있다가 유대 총독 빌라도로부터 갈릴리 사람 예수에 대한 판결을 의뢰받기도 했으나, 결국 최종 판결권은 빌라도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이 당시 그의 나이 50세 전후였는데, 이후 그의 삶은 비참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헤로디아와 재혼하기 위해 내쫓았던 왕비가 다메섹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결국 이 일로 다메섹 왕과 전쟁을 치르게 되었고 패배하였으며, 칼리굴라 황제에 의해 59세때 그 형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리용으로 유배당한다.
4) 헤롯 빌립(B.C.4-A.D.34) : 헤롯대왕의 다섯 번째 아내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의 아들로 이두래와 드라고닛의 분봉왕이었다. 그가 다스린 백성들은 주로 수리아인과 헬라인 계통의 비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주화에 황제의 초상을 새겨 넣은 최초이며 유일한 헤롯 왕조의 영주였다. 그는 두 도시를 건설하였다. 파네아를 확장 재건하여 황제를 기리기 위해 가이사랴 빌립보로 개명했는데, 이 도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유명한 곳이다. 어촌 벳세다를 헬라식 도시로 재건하여 아구스도의 딸 줄리아를 기리기 위해 이 도시의 이름을 줄리아스로 개명하기도 했는데, 이곳은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고쳐주신 곳이며, 근처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형제들처럼 야심도 없었고 간교하지도 않았던 빌립은 그의 영토를 온건하고도 평온하게 다스렸다. 그는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는 세례요한의 머리를 요구했던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와 결혼하였으며, 슬하에는 자녀가 하나도 없었다.
5) 헤롯 아그립바 1세(A.D.39-44) : 헤롯대왕의 손자인데, 일찍이 헤롯대왕에 의해 살해된 헤롯대왕의 둘째 아들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이며, 헤로디아의 친오빠이다. 어릴 때 가족간의 참화를 피해 로마에서 자랐으며 교육을 받고 그곳에서 긴 세월을 보냈다. 티베리우스 황제에 의해서는 한 때 투옥당하기도 했으나 칼리굴라의 숙부인 클라우디우스가 황제에 오를 수 있도록 공헌하여 그 대가로 유대 지역의 통치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친유대주의 정책을 폄과 동시에 초대교회를 핍박했던 인물이다. 아그립바는 철저하게 헬라문화를 숭상하였는데, 그러다가도 유대에서는 유대적 행동을 취하는 기회주의자였다. 초대교회가 부흥할 당시,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시켰다. 하지만, A.D.44년 질병으로 급사한다. 그때 상황을 성경은 행12:21이하에서 기록하고 있다. (읽기)
6) 헤롯 아그립바 2세(A.D.48-70) : 아그립바 1세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었을 때 17살의 어린 나이여서 부친이 다스리던 지역은 로마 총독이 다스리게 되었다. A.D.50년에 칼키스의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으며 후에 갈릴리 지방의 분봉왕이 되었다. 그는 누이 버니게와의 근친 상간으로 유대인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다. 가이사랴의 베스도 총독에게 문안하러 갔을 때 구류되어 있는 사도 바울을 만나 그의 변증을 듣게 되었다(행26). 그의 재임 기간 중 유대전쟁 (A.D.66-70)의 발발로 예루살렘이 완전히 훼파되는데, 철저히 로마의 신복이었던 헤롯 아그립바 2세는 A.D.70년 8월5일 예루살렘을 함락한 로마의 디도장군과 함께 자기 백성을 참담하게 정복한 로마의 개선 축하식에 참석했으며 로마의 행정관 노릇을 하다 100년경 죽었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결국 헤롯 아그립바 2를 마지막으로 헤롯 왕가는 종막을 내리게 된다.
● 이들 여러 헤롯왕 가운데 두 사람만 살펴보자.
먼저 헤롯대왕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자신의 처자식과, 또 베들레헴의 2살 이하의 유아들을 무참히 죽인 것으로 보아 권력욕이 강하고 잔학한 자이다. 한편 로마의 정권 변화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하여 자신의 통치 기반을 확고히 한 것으로 보아 국제 정세에 밝고 처세술이 뛰어난 자였으며, 이방인으로서 30년 동안이나 유대를 통치한 것으로 보아 조직력과 지도력을 갖춘 자였다. 한편 대규모 건축 사업을 벌여 왕궁과 요새, 예루살렘 성전 및 이방 신전 등을 건축한 것으로 보아 의욕적인 추진력을 갖춘 자이다.
하지만,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온갖 권모와 술수, 또한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헤롯 대왕의 영욕에 넘친 삶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슬픈 종말을 증거해 준다. 더욱이 그 역시 끊임없는 음모로 인해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마침내는 병으로 심히 앓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는가! 이렇듯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권력은 절대 부패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자 베들레헴의 2살 이하된 유아들을 모조리 몰살시킨 헤롯의 학살사건은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를 넘어뜨리려는 사단의 흉악한 궤계와 미혹을 상징해 준다.
그러나 헤롯을 통한 사단의 궤계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은 계획하신 그대로 면밀히 이행되었다. 이는 사단의 궤계가 아무리 사악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승리하심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싸움의 승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성취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음을 기억하며 담대히 주의 뜻을 이루어 가야 하겠다.
다음으로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 안디바는 이복 동생인 빌립의 아내와 불법으로 재혼한 것으로 보아 부도덕한 자이며, 충언을 아끼지 않은 세례요한을 옥에 가두고 부당하게 목을 벤 것으로 보아 교만하며 권력을 남용한 자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분봉왕으로 등극 후 리비아스, 디베랴 등 폐허된 도시를 재건한 것으로 보아 통치 권력욕이 강하고 다소의 지도력을 갖춘 자이다. 뿐만 아니라 재판 받으러 온 예수에게 이적 볼 것을 기대하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함께 예수를 희롱한 것으로 보아 영안이 어두운 사악한 자로, 악을 행하기 위해 대적 빌라도와 친구가 되고, 예수님께 ‘여우’라 불릴 정도로 간교하고 교활한 자였다.
헤롯 안디바와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함을 알면서도 예수를 대적하고 죽이는 일에는 서로의 권한을 인정해 주며 힘을 합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악한 자들이 성도를 대적하고 넘어뜨리는 일에는 비록 그들 사이가 서로 좋지 않다 할지라도 하나가 되어 연합함을 보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들은 악인의 연합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도록 주의 도우심을 덧입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백성들은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고 힘을 소진하게 하는 온갖 어리석음, 상호비방, 시기질투, 분리하며 파당을 나누는 일, 미워하고 다투는 일 등을 중지하고, 성령충만하여,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지진해일의 참상을 보지 않았는가! 우리 앞에도 언제든지 종말은 다가올 수 있다. 언제라도 주님 부르실 때,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도록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