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밤의 13가지 기본 원리 (The thirteen principles of faith) 중 제12 원리인 유대인 메시 아의 도래(The coming of the Jewish Messiah)에 대한 대망 사상은 기독교와 중요한 연결점을 지니고 있다. 유대교의 메 시아는 문자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며, 왕들이 권좌에 오를 때 기름으로 왕들을 붓는 고대의 관행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메시아는 마지막 때 왕으로 기름부 음을 받게 될 자를 의미한다. 하지만, 결코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세주와 같이 어떤 신 적인 존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 유대 인들은 과연 어떤 메시아를 믿고 있는가? 성경해석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문자적 해석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메시아가 오기 전 전쟁과 고통이 존재할 것(겔 38:16)과 ‘올람 하바’(world to come,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유대교를 위한 민족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영원한 심판주로 오실 예수가 이 땅에 두 번째 오심(Second Coming)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들의 참된 메시아가 예수였음을 고백하는 회복의 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는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롬 11:26)는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한 사도 바울의 언급과 같이 지금은 이방인들의 구원의 수가 차기까지 완악해진 이스라엘이 다시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때가 올 것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의 성취로서 그들의 진정한 메시아가 예수였음을 알기까지 먼저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자들로서 유대인들의 회복과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기도와 복음전파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편, 오늘날 이런 메시아 대망사상이 유대교 현대신학자와 철학자들에 의해 많은 유대인들에게 왜곡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 마쉬아흐(
마지막 제13 원리는 죽은 자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the dead)에 대한신앙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 원리는 궁극적으로 기독교의 부활에 대한 이해에 있어 의미 있는 고찰이 될 수 있다. 사실, 예수님 당시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토라에 나타나 있지 않는다는 이유로 믿지 않았고, 바리새인들은 부활과 천사에 대한 신앙(행23:8, 마22:23)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이들이 믿고 있는 부활 신앙은 기독교의 그것과 사뭇 다름을 알 수있다. 사실, 유대교에서는 내세에 대한 구체적인 교리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올람 하바 즉 내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으며, 또한 부활을 암시하는 구약의 본문들(단12:1-3; 사26:19)을 받아들인다.
사실 그들이 말하는 죽은 자의 부활은 매우 현세적인 삶과 연장선 상에서 해석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선, 유대교에서 죽음에 대한 개념은 결코 비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자연적인 현상이며 과정이라고 인식한다. 즉 부활하게 된다는 것은 일상적인 동일한 우리의 삶과 같으며, 부활 때에도 동일하게 육체와 영혼이 결합하여 부활하는 것을 믿기에 죽은 후 부활 시까지 그들의 뼈를 잘 보관하기 위해 목관이 아닌 클로스크마라는 부드러운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석관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현대 유대교에서는 자신들의 독특한 역사적인 경험과 이스라엘 주변 지역의 종교 속에 편재해 있던 사상과 개념들의 영향이 융합된 독특한 형태의 부활신앙을 볼 수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그들의 민족적 수난 속에서 부활이라는 개념을 철학적, 신학적인 재해석 작업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적인 회복과 정당한 보상과 보복의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종교, 나아가 그들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유대인들의 부활신앙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라 하겠다. 그들이 기본적으로 올람 하바를 기다린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유대교의 목표는 단지 천국만을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유대교는 사실 부활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현재의 삶에서 도래할 올람 하바의 시대에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잘 알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여긴다. 즉, 현재의 삶에 어떻게 충실하게 토라의 삶을구현하고, 진실되게 선을 행하는 윤리적인 삶을 살 것인지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이런 메시아의 도래의 시대에 그들이 해야 할 의무는 무엇보다 토라와 탈무드 공부(the study of Torah and Talmud), 그리고 계명을 따라 선행(loving-kindness)에 착념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이런 유대교의 메시아와 부활 사상은 그들이 왜 아직 예수의 부활과 메시아 되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잘 보여 준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예수를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은 어떤 이론적인 설명의 부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숨은 경륜으로 인해 아직 그 믿음과 은혜의 테두리에 단지 들어오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도리어, 오늘날 기독교는 부활의 때를 위해 현실의 삶에서 치열하게 준비하는 유대인들의 삶의 태도를 통해 심오한 교훈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들이 올람 하바를 준비하면서 그들의 몫과 사명인 토라 공부와 계명을 따라 선행에 최선을 다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또한 주어진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되, 거기에 참된 진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파의 사명을 다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고전15:42)라고 언급했던 사도 바울의 부활에 대한 비유적 설명과 같이 썩지 아니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기 위해 썩어질 현재의 삶에서 심고,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 말고 진정으로 부활을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