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 30편의 '성전 낙성가';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로 명명되어 있는 시 30편은 성전의 봉헌시, 또는 낙성식에
주로 사용되는데 '성전 낙성가'라는 말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로 분류된다. 첫째, 이 시를 왕궁의
봉헌식 때로 보는 견해. 주로 '칼빈'(Calvin)과 '클라우스'(Clauss)에 의해 주장되는 이 견해는 '집'이라는 단어가
'왕궁'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고, 다윗의 왕궁이 압살롬의 반역에 의해 더럽혀졌으므로 정결케 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이
시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더럽혀진 왕궁을 정결케 하면서 사용한 시라고 해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본문의
역사적 배경이 염병으로부터의 구출이었으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둘째, 시온 성곽의 재축성과의 관련으로 보는 견해. 다음으로
제기되는 견해가 다윗이 시온 성곽의 재 축성을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저술한 시라는 견해이다(참조, 삼하 5:12). 그들은 시온
성곽 건축에 대한 다윗의 생각이 그의 왕국의 견고함과 위대함의 서약으로 생각했던 사실을 환기시키며, 이 논리를 말하면서
간접적으로는 심한 병을 막아내고 물리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 역시 완전한 것은 못 된다. 셋째,
미래에 건축될 성전을 바라보고 지은 시라는 견해. '헹스텐버그'(Hengstenberg), '카일'(Keil),
'톨룩'(Tholuk) 등에 의해 주창되는 이 학설은 다윗이 미래에 건축될 장엄한 성전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으로 저술한 시라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비록 다윗이 자신은 하나님의 진노인 염병에 걸리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의 치유를 위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단을 쌓았고(참조, 삼하 24:18-25), 그곳에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거룩한 곳인 성전
부지였다는 사실로 인해 가장 타당성 있는 견해로 받아들여진다.
이
시를 연구한 학자들은 한결같이 ‘이 시는 개인적인 감사의 노래’라고 말합니다. 내용상으로도 어느 한 개인이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에 그야말로 자신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는 생각으로 드린 기도에 가깝습니다.
그
런데 이 시의 표제로는 독특한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성전 낙성가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집’을 헌당할 때 부른 노래라는 뜻입니다. 헌당예배때 부르는 노래라는 표현입니다. 역사적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가 전에도 잠깐 말한 바가 있는데, ‘다윗의 시’라고 한다면 다윗이 지은 시, 혹은 다윗이 모은 시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지은 시는 다윗이 저자라는 의미이고, 다윗이 모은 시는 다윗이 편집자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편
30편은 아마도 이 시는 다윗이 짓거나 다윗이 모은 시였는데,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헌당하는
순간에 불려진 시였을 것입니다.
기
원전 165년에 당시에 이스라엘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안티오쿠스 4세가 유대교 말살 정책을 펼치게 되어 이스라엘 민족은 그야말로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독립운동을 합니다. 이 독립운동을 주도한 가문이 마카비 가문이었습니다. 이들의 독립운동은 크게 성공하여 결국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하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날을 기념하는 절기가 하누카라고 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오늘날까지도 지키는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하누카 절기마다 이 시편 30편이 낭송되었기 때문에 이 시의 표제가 ‘성전 낙성가’로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