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그에게서 열손가락을 앗아갔지만, 열정과 꿈까지 빼앗지는 못했다. 한때 산은 그에게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을 안겨줬지만, 이제 산은 그의 전부가 됐다.
열 손가락이 모두 없는 중증 장애인이 7대륙 최고봉을 완등했다. 산악인 김홍빈 씨(44세)는 2일 오후(현지시각) 남극대륙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4897m)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 7대륙 최고봉 완등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다.
김 씨는 지난 1997년 유럽 엘부르즈(5642m)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남미 아콩카과(6959m), 북미 매킨리(6194m), 호주 코지어스코(2228m), 아시아 에베레스트(8848m)를 차례로 등정했다.
대학에서 처음 산을 만난 그는 1991년 북미 매킨리 등정에 나섰다가 동상으로 열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좋아하던 산에서 당한 사고라 후회는 하지 않았지만,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깊은 방황을 했다. 그러다가 1997년 광주 무등산에서 어느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이들은 김 씨를 보고는 “저런 사람도 열심히 살아가는데…”라고 말했고, 김 씨는 ‘과연 열심히 살고 있나’ 반성하게 됐다. 7대륙 최고봉 등반 계획은 그렇게 시작됐다.
손가락이 없다는 것은 산악인에게 치명적이다. 스틱이나 아이스 액셀(도끼) 같은 보조 장비를 활용할 수 없고, 등산화 끈을 매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김 씨는 지난달 9일 남극으로 떠나기 앞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꾸준히 준비하고 계획해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가슴이 뭉클하다”며 “특히 어려운 시기에 여러 사람에게 힘이 되고 희망을 줄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