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 A.D.354-430)은 사도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기독교 신자이며 서방 교회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그는 히포(Hippo)의 감독으로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교부입니다. 그러한 그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그의 어머니 모니카입니다. 모니카는 끝까지 기도하여 방탕한 아들을 성자로 만든 여인입니다.
16살 때 카리타고(Casritago)로 유학하면서 어거스틴의 방탕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한 아프리카 여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기까지 했지만 모니카는 "기도의 아들은 망하지 않는다" 고 굳게 믿고 십여 년을 하루같이 기도했고 그 기도는 아들이 카리타고에서의 방탕한 삶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모니카의 권면으로 그는 동거해 온 여자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나이 어린 여자와 정식 결혼을 위해 2년을 기다려야 했는데 어거스틴은 이 기간을 참지 못하고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는 "왜 나는 이 더러운 생활을 깨끗이 끝내지 못할까?" 애통하여 부르짖으며 폭우 같은 눈물을 쏟으며 회개하다 이웃집 뜰에서 아이들이 떠들며 노래를 부르는데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 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는 서재로 뛰어 들어가 성경을 폈습니다. 로마서13:13의'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그의 폐부에 깊이 박혀 들어갔습니다. 오랜 방황이 끝나는 순간이었으며 기독교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386년 8월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오늘의 제가 있는 것은 모두 어머니의 덕택이라고 나는 믿습니다'면서 어머니는 한 남편의 아내였고, 부모님께 순종하였으며, 자기 집안을 경건하게 다스렸고, 착한 일을 하여 칭찬을 받았으며, 자식들이 당신의 길에서 떨어져 가는 것을 볼 때는 그들의 출산 시에 산고를 겪는 듯한 괴로움을 몸에 느끼면서 그들을 길러냈습니다?고 고백록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토록 자신을 사랑했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그의 눈물어린 '고백록'과 기타 저작에 잘 기술하고 있습니다. 모니카를 통해 어거스틴의 가슴에 담겨진 사랑의 빛은 그의 신학 형성과 후대의 신학 사조에 지대한 영감을 불어넣는 촉매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