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는 넓은 들녘 초라한 부부가 마주보면서 고개를 숙여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런데 부부의 피곤한 발끝에 조그마한 아기의 관이 가로놓여 있는 것 아닌가? 그림의 내용인즉 불쌍한 젊은 부부가 아기 관을 묻기 전 기도하는 비통한 모습이다. 밀레가 그 그림을 선배에게 보여 주었다. 그때 선배가 충고해 주었다. 애틋한 사연,아름다운 전원과 황혼,그리고 감사기도…. 다 좋은데 가운데 관이 맘에 걸린다. 관 대신 바구니를 그려 넣으면 어떤가? 그래서 아기 관을 바구니로 고쳐 그렸다. 그랬더니 그 의미가 만 배로 살아난 것이다. 전체 그림은 그대로인데 중간 하단에 바구니 하나 고쳐 그리니 비통한 장례식이 황혼의 감사로 승화되면서 불멸의 명화가 된 것이다.
시인 김춘수는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고 기원했다. 그렇다. 감사하는 기도 한 마디,고맙다는 말씨 하나,매력적이고 고운 미소 하나,영감 있는 노래 하나만 바꿔도 신앙과 인생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