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이름이 똑같은 기업인 코닝은 2000년 기업가치가 1200억 달러(주식 시가총액)에 달했다. 1990년대 말 IT 붐을 타고 통신용 광섬유(optical fiber) 사업에 진출한 것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당시 광섬유부문 책임자였던 웬델 윅스(Wendell P. Weeks·48)씨는 코닝시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IT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월드콤(World Com), 글로벌크로싱(Global Crossing) 등 거래 업체가 줄도산하면서 코닝도 급전직하했다. 2001년에는 적자만 55억 달러가 넘었다. 한때 주당 113달러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2002년 1달러10센트까지 폭락했다.
웬델 윅스는 어떻게 됐을까? 다른 회사 같았으면 목이 열 개라도 살아남기 어려웠겠지만, 그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코닝의 창업자인 호튼(Houghton) 가문의 제임스 R. 호튼 당시 코닝 회장은 윅스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사장 자리를 내주며 회사를 살려 보라고 맡긴다. 2002년의 일이다.
윅 스는 낭떠러지에서 '마법'을 부렸다. 2005년 코닝은 4년 만에 흑자를 내며 부활에 성공했다. 코닝이 1988년부터 개발에 공을 들여온 LCD 기판 유리가 세계적인 LCD TV 붐을 타고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묘하게도 1988년 코닝의 LCD 부문 시장 개발 책임자를 맡았던 사람도 윅스였다.
윅스 회장의 스토리는 기업 경영에 있어 사람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어떤 기적을 낳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윅스가 입사 3년 차 햇병아리 시절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돌아오겠다는 약속만 하면 된다"며 흔쾌히 학비를 대줬던 사람도 호튼 전 회장이었다.
지난 연말 미국 본사에서 만난 윅스 회장은 2m가 넘는 장신이었다. 검은 정장 양복에 흰색 행커치프 차림.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공손한 전형적인 백인 신사였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용인해 준 코닝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 자신이 한 결정이 정당하고 현명한 방법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미래가 예상과 다르더라도 그 결정 때문에 비난 받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사고방식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실수의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은 사람은 반드시 다음 번엔 더 나아질 것이라는 사실이죠. 물론 우리는 완벽해야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우리의 가치(value)를 지켜낸다면 실패도 괜찮다는 겁니다. 내가 아마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