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위 구원파로 알려진 단체는 크게 3계열로 나뉜다. 권신찬(사망)-유병언 계열(www.ebcgrace.com), 이요한
계열(http://seoul.jbch.org), 박옥수 계열(www.goodnews.or.kr) 등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교회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공식 규정됐다. 예장합동총회(2008년/93회/이단), 예장통합총회(1992년/77회/이단),
예장고신총회(1991년/41회/이단), 기독교성결교회총회(1985년/40회/이단사이비집단) 등이다.
권신찬-유병언
계열(기독교복음침례회)은 서울 삼각지에 위치한 서울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국에 10개 지부를 두고 있으며 수시로
성경강연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곳의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하면 이미 사망한 권신찬 씨의 강연이 먼저 소개된다. 권신찬이라는 한
개인의 사상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요한 계열(대한예수교침례회)은 경기도 인덕원 사거리에 위치한 서울중앙교회를 중심으로
서울 경기지역에 25개의 지부모임, 지방의 10여 개 지교회를 두고 있다. ‘성경강연회’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개최해 이요한(본명
이복칠)의 구원파 사상을 전파하고 있다. 박옥수 계열(대한예수교침례회)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기쁜소식강남교회를 중심으로
전국에 200여 개의 지부를 두고 있다. 이들 지부 이름은 대체로 ‘기쁜소식00교회’으로 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구원파 단체 중
가장 세가 큰 편이다. 관련 단체로는 기쁜소식선교회, 국제청소년연합(IYF, 참고 IVF가 아님), 링컨학교(대안학교),
그라시아합창단 등이 있다.
구원파는 사회적으로 대변혁기였던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외국인(딕욕,
길기수 등)에게 교리를 전수받은 한국인들에 의해 국내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구원파의 교리를 전수했던 외국인 선교사들은
공통적으로 체계적인 신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세계관은 당시 기성교회 안에는 복음이 없고 구원받은 목회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시각을 갖고 제자들을 양성했다. 위의 권신찬, 유병언, 이요한, 박옥수 씨는 처음 함께 길을 걸어갔다.
그러던 중 1968년 박옥수 씨가 결별하면서 독자 노선을 걸었고, 1983년 이요한 씨도 이탈하게 되었다. 권신창-유병언 씨는
장인과 사위관계로 함께 동행했다.
초기 구원파 신도들은 ‘10단계 질문서’ 등을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등의 질문을 던지며 정통교회 성도들에게 접근한다. 질문에 한두 번 응답해 주다보면
‘깨달아야 구원을 얻는다’는 등의 구원파 핵심 교리가 드러나게 된다.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구원파의 교리를 핵심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깨달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구
원파는 ‘깨달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한다. 정통교회에서 말하는 ‘믿음으로’라는 말과 ‘깨달음’이 같은 의미라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다른 의미로 가르친다. 권신찬 씨가 ‘죄사함을 깨닫고’ 유병언 씨가 ‘복음을 깨닫고’ 이요한 씨가 ‘중생을
경험하고’ 박옥수 씨가 ‘거듭난 체험’을 했다는 것은 같은 뜻으로서 ‘깨닫고 거듭나야 구원을 받는다’면서 그 구원받은
시각(영적생일)을 알아야 한다고 하며, 육적생일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영적생일을 기억해야 구원받은 증거라고 주장한다.
구
원파측은 영적인 생일을 모른다고 해서 꼭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말은 하면서도 구원받은 날(영적생일)을 모르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반응한다. 다시 말해 구원파식 구원은 반드시 자신이 구원 받은 날짜를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깨달음’의 증거가 된다는 말이다.
구원파 신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어떻게 육신의 생일을 알면서 참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영적 생일은 모르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그 말 속에 바로 허점이 있다. 육적 생일과 영적
생일은 유사성 내지는 유비성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육적 생일을 알 듯이 영적
생일을 알아야 한다면, 영적 생일도 자기 스스로 알 수 없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적으로 태어난 사람 스스로 자기 생일을
감지하거나 아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육적인 생일은 자신이 발견한 게 아니라 훗날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자마자 달력을 보고 안 사람이 있을까? 따라서 육적생일을 아는 것처럼 영적인 생일을 알아야 한다는
말은 그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재미있는 예가 또 하나 있다. 구원파 신도들이 어떤 집사님에게 구원받은 날짜를
모르는 것을 보니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다그치니까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나는 언제부터 구원받았는지는 모르나 분명히
구원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내 속에 성령님이 계시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언제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지 모른다고 나보고 자전거를 못 탄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언제 구원받았는지는 모르나 분명히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얼마나 통쾌한 대답인가?
2. 구원받은 자는 회개할 필요없다고 한다.
구
원파의 ‘회개’는 정통교회의 그것과 다르다. 구원파의 회개관은 한 마디로 ‘구원받은 자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회개란 ‘돌이킨다’는 말로써 오직 구원을 위해 돌이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사해 주셨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만 가능한데 이미 사해준 죄를 또다시 사해 달라고 울고불고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박옥수 씨의 경우 심지어 성경에 회개하면 죄가 씻어진다는 말이 없다고까지 말한다. “여러분, 아무리 유명한 부흥
목사의 이야기라 해도 성경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길이 아닙니다. 회개하면 죄가 씻어진다는 말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회개해서
죄를 씻는 것도 성경적인 방법이 아닙니다”(「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2」 기쁜소식사, 1993. p.50). 권신찬-유병언측 신도로
알려진 말리 홀트 여사(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도 ‘구원받은 자는 더 이상의 회개가 필요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 말리 홀트 인터뷰 참조).
회개는 한 번만 하는
것으로 회개를 거듭하는 것은 구원이 없는 증거로 보는 점이 비성경적이다. 물론 구원을 위한 회개를 두 번 할 필요는 없다(히
6:1-2). 구원파는 구원을 위한 회개와 성화를 위한 회개를 혼돈하고 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회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성경의 회개라는 단어는 제 1단순과거형으로 단회적인 용어다. 이 말은 성화를 위한 회개와 구원을 위한 회개라는 용어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본질적으로 구원을 위한 회개든(히 6:1-2), 성화를 위한 회개든(시편 51:14, 삼하
24:10, 마 6:12, 요일 1:8-9 등), 용서하고 용서받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단회적인 것이다. 구원을 위해서 단 한 번의
회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계속 범한다는 점에서 성화를 위한 회개는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비
록 구원을 위한 회개는 단회적인 것이지만 혹 믿음이 없어서 반복적으로 한다고 해도 그것이 구원받지 못한 증거는 결코 아닌 것이다.
단지 반복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더욱이 구원받은 후에도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우리로서는 날마다 성화를 위한 회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이 분명히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골 2:6-7).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 즉
주기도문에도 이것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내용이다(마태복음 6장). 구원파 식으로 해석하면 주기도문은 구원을 위한 단회적인 회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이 기도문의 회개는 성화를 위한 반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이 기도문은 반복되어야 할 기도 내용이다. 기도문
내용 중 하나님 이름이 한 번만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없으며, 일용할 양식이 한 번만 필요한 것이 아닌 이유와 같다. 둘째,
주기도문의 ‘죄’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계속 자범죄, 즉 계속해서 짓는 죄를 의미한다.
3. 요한일서 1:9, 시 51편 등의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구
원파, 특히 박옥수 씨는 자신의 구원파 사상을 입증하려고 요일 1:9, 시편 51편 등의 성경구절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그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본 뜻과 박 씨가 설명하고 있는 내용은 다르다. 박 씨가 성경을 오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씨는 죄와 범죄는 다른데 한국교회는 성도들에게 범죄에 대해서 회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죄의 근본을 해결하면 범죄는
자동으로 해결된다는 식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사상을 입증하는 성경구절로 요일 1:9, 시편 51편을 언급하고 있다. 박 씨의
주장을 들어보자.
“요한 1서 1장 9절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지은 죄를 하나하나 모두 고하면 죄가
씻어진다는 말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달랐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이라고 되어 있지요?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살인하고 간음하는 것이 죄입니까? 천만에요.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여러분,
문둥병이 무엇입니까? 손가락이 빠지고 눈썹이 빠지고 코가 일그러지면 문둥병입니까? 아닙니다. 그것들은 문둥병의 증상이고 문둥병의
결과이지, 문둥병 자체는 아닙니다. 여러분, 장티푸스가 무엇입니까? 열이 나고 머리카락이 바지는 것입니까? 그것이 장티푸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장티푸스 균이 들어 갔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요. 그것처럼 죄와 범죄도 근복적으로 다릅니다"(박옥수,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1」, 기쁜소식사, 1993. p.33).
“성경에는 '죄'와 '범죄'에 대해 명백하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이 말씀에서 '내가 도둑질 했습니다'하고 범죄한 것을 자백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자백하라는 뜻입니다”(「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1」 p.35).
“시편 51편 5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그렇게
고백하지 않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자신이 무슨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것이
아니고 그는 근본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그 자체를 고백한 것입니다. 나는 죄 덩어리로 뭉쳐진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의 결과를 고백하는 것과 죄의 근본을 고백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1」p.36-37).
박 씨에 의하면 마치 우리가 죄의 근본만 해결하면 이후에 나타나는 범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다. 범죄하지 않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도 가능하게 된다. 또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손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과연 그런가? 박 씨가 사용한 성경구절의 본 의미를 파악할 때 그의 주장의 옳고 그름이
자연스럽게 증명되리라 본다.
박 씨는 본 51편 5절의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는 구절을 언급하면서, 다윗은 자신의 어떠한 범죄 행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원죄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죄만 온전히 해결되면 범죄에 대해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한 말이라 보여진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다윗은
원죄에 대한 회개를 여러 번 했다는 말이 된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한 후에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용서해 달라고 회개한
바가 있다(삼하 24:10). 또한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숨기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용서해 주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시편
32:5). 그 외에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구원파 논리로 보면 이는 다윗이 원죄를 위해 여러 번 회개를 했다는 말이 된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따라서 다윗은 지옥에 갔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가? 시편 5편 14절에 ‘피 흘린 죄’를
용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다윗이 말한 피 흘린 죄는 그럼 무엇인가? 17절의 ‘통회하는 마음’이 다윗에게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 마음은 무슨 마음인가? 계속해서 원죄에 대한 심정을 표현을 하는 말일까?
박 씨는 요한일서 1:8-9절의
성경구절도 범죄가 아니라 원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그의 주장이 틀리게
된다. 첫째 요한일서의 수신자는 불신자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는 성도들이라는 점이다. 이 서신을 쓴 요한이 편지를
받는 이들을 향해 ‘나의 자녀들아’, ‘형제들아’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의 죄를 지적할 때
원죄를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따라서 요일1:8-9이 또다시 구원을 위한 죄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모순된다. 둘째,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에서 ‘우리’는 복수형으로 저자를 포함하는 말이다. 따라서 요한이 자신을 향해서도 원죄를 언급하며 회개할
것을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셋째, 이 때의 ‘죄’라는 단어는 복수형이다. 여러 가지의 죄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창섭 교수(총신대 신대원)는 <주요 이단대책 종합자료집>을 통해서 구원파(특히 박옥수 씨)의 이단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도움이 되리라 본다.
[박
옥수의 신앙과 신학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박옥수는 성화의 과정을 곧 중생하지 못한 죄인으로 규정짓는데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신자들이 죄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중생하지 못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의 신학사상에서는 개혁주의의 성화의
과정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박옥수의 잘못을 정리할 수 있겠다.
1. 박옥수는 기성교회 신자들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인정치 아니한다. 2. 박옥수는 죄와 죄의 증세를 구분하여 간음, 살인 등은 죄의 증상이며 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3. 박옥수는 구원을 받고 중생한 체험의 날짜를 알지 못하면 진정한 중생이 결여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4. 박옥수는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기 보다는 인간의 확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인식론적 체험주장- 깨달음을 통한 구원-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란 사상 결여). 5. 박옥수의 구원론에는 성화의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6. 박옥수는 성화과정의 자범죄 등을 원죄와 혼돈하고 있다. 7. 박옥수는 구원후의 범죄를 인정치 아니하므로 율법폐기론의 위험성을 주장하고 있다(구원 후 회개의 무용론). 8. 박옥수는 기본적으로 구원파 계열의 구원론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