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가복음 19:15-19> 15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16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되는 권세는 이 세상에서 행한 일에 따라 차등적으로 주어집니다. 받은 재능을 가지고 많이 일한 자는 많은 권세를 얻고 받은 재능에 비해 적게 일한 자는 적은 권세를 얻습니다.
• 이러한 차등적인 권세는 새로운 계급과 계층을 만들지 않을까요?
• 그러한 계층이 또 다른 슬픔을 만들지 않을까요?
2) <요한계시록 21:3-4>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슬픔과 괴로움과 눈물이 사라지는 이유는 우리를 쾌락과 향락과 유흥에 빠지게 만드는 많은 것들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궁극적인 슬픔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멀어짐과 그분이 주시는 훈련과 연단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 때문에 모든 슬픔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 당신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지금도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3) <요한계시록 21:12-18> 12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15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16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17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18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성도들이 영생하게 될 장소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반적인 천국이 아니라 ‘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성도들과 하나님의 관계는 왕과 백성의 관계가 되어서 백성들은 왕의 유업을 받게 되며 죄인들과 원수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러한 영생의 시간에는 이 세상의 눈물과 사망과 애통과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습니다. 처음 창조되었던 것들은 다 지나가게 되고 새로운 하늘과 땅이 열립니다.
•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거룩한 성인 새 예루살렘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부입니까, 전체입니까, 아니면 핵심입니까?
4) <요한계시록 22:1-2> 1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생명수의 강, 생명나무의 의미는 그 나라의 영원함과 영생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 나라에 들어간 성도들은 세세토록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게 되어 있습니다.
• 이러한 영생과 다스림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서입니까?
•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가고자 한다면 결국 누구의 나라에 가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러한 자들은 나중에는 어떤 나라에 가게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