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셨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온다. 피조물인 작은 인생도 비우기가 힘든데, 창조주이시며 위대한 신이셨던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시다니 ! 생각할수록 놀라운 부분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기에 가능했다. 자기를 위해 자기를 비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를 비운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더나은 삶을 위해서 자기를 비우려고 하거나, 삶에 불편한 관계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래, 비워야지..'라고 생각한다. 그 비우려는 이유가 인생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 이에 대해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는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비울 때 그 안에 참된 삶의 모든 것이 있었다.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부활하셨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셨다.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비우신 예수님을 닮고 싶다. 무엇보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내 힘은 빠지고, 두손을 하나님께 들 수 있는 것 같다.
2)타인
타인들 역시 자기를 비우는 것에 취약한 것 같다. 그들은 비운다는 것을 어려워한다. 오히려 채우는 것에 익숙하다. 권력이든 명예든 만족감이든 뭐든 더 채우고 얻으려는 모습을 주위에서 흔히 볼수있다. 간혹 그들은 '자기를 비운다' 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른의미이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도 '자신을 비운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것은 자기세계의 성공적인 건립을 위한 노력이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조차 자신을 위한 또다른 욕심일뿐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완전한 비우심으로 인한 십자가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도 이 놀라운 이치를 한번도 경험해본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놀라운 성경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자는 욕심뿐인 삶에서 벗어날수 있을 것이다..
3)하나님
예수님께서 비우심을 통해 이루신 것 역시 한결같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만큼 비웠으니 뭐라도 되겠지' 라는 사사로운 생각을 하지도 않으셨고 그저 하나님을 향해서 순종하셨다. 하나님을 위해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받아들이는 순종을 보이셨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고통을 감당하셨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로 가능하셨을 것이다. 권능의 하나님을 향한 강한 신뢰와 사랑만이 고통을 감당케 한다. 예수님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강한 신뢰와 사랑에 응답되듯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시켜주셨다. 부활 속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강렬한 사랑의 연결이 이루어진다. 그 다음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랑이 되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연합된 관계의 아름다움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아름다운 교류가 드러난다..
4)사탄
사탄은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 하라고 한다. 채우는 것도 나를 위해, 비우는 것도 나를 위해, 옳은 것도 나를 위해, 사는 것도 나를 위해를 좋아한다. 물론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아주 간교하게 인간으로 하여금 인생에 몰입되게 설득 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 비우셨 던 것과는 정반대이다.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게 한다. 자기자신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본능에 충실한 삶이다. 생각의 틈을 없애고, 반성의 틈이 없기를 원한다. 사탄은 내가 그냥 말하고 싶은데로 말하고, 그냥 행동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을 제일 좋아할 것이다. 한번더 생각할 틈도 없이 자신 안에 몰입되게 한다. 사탄은 우리가 절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비우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