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수님을 비방한 행악자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어려움에서 구원치 아니하시고 내버려두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분의 뜻을 의심하고 판단하곤 하였다.
중요한 것은 너무도 좋으신 그분과의 관계이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
(2) 타인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고 있지만, 각자의 신앙의 모습은 다르다. (그렇지만 그것을 우리가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함께 매달린 죄인 중 한 행악자의 간구를
들어주셨다. 죄인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옳으심을 시인하며,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각해주시길 바라는 그의 간구는 관계의
형성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연약한 자로서 나아가길 원하시고 그럴 때 더 사랑해주시는 것 같다. [학교에서도 문제를 일으킨 아이가 선생님 앞에 불려왔을 때, 고개를 숙이고 순진한 눈망울로 '제가 잘못했어요' 라고 말하는 아이는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하나님도 이런 마음이 아니실까 추측해본다.]
세상 사회에서는 연약한 자보다 잘난 자를 더 인정해주고 친해지고 싶어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 모습을 더 사랑해주시니 참 감사하다. 사회로 나가면 어느 정도의 가면을 쓰게 된다. 하나님께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참 좋다.
(4) 사탄
사탄은 하나님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막는 것 같다. 39절말씀의 행악자 처럼 하나님을 무능한 분으로 생각하게 하고, 사람의 관점으로 하나님을 보게 하여(십자가에서 탈출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관점), 하나님과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