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 42눅 2; 1-7 구유에 뉘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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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 2; 1-7 구유에 뉘이신 예수님_6

 

 2013.12.25.수. 성탄예배

 

*개요:    51계획, 3분석, 5은혜-6결심

 

1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세상의 구세주로 이땅에 오신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동일하게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다가 열달만에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세상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직접 내려오신 것이 아니고 인간으로 태어나신 이유는 온전한 인간으로써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였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시는 분으로 가장 온전한 인간이셨습니다. 또한 인간의 죄를 대신하실  수 있는 분으로 가장 신적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사 아기로 출생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오신 예수님이었지만 그분의 출생은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그것은 출생했을 때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이셨다는 것입니다. 아기는 낳아서 엄마 품에 놓이거나 최소한 따뜻한 그 무엇인가에 놓여야만 하는데 예수님은 낳아서 강보에 싸여서 말구유에 뉘이셨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무 위에 놓여지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의 가장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처음 오셨을 때 엄마 품이 아니라 딱딱한 구유, 그것도 나무로 만들어진 여물통에 뉘이셨다는 것은 그분의 인생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그분은 평생 나무로 사람들의 필요를 만드는 목수의 아들로 자랐고, 자신이 친히 목수의 일을 하셨으며,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바로 그런 나무 위에서 숨을 거두셨던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온전히 자기 자신의 그 무엇을 누리지 못하고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해서 평생 살다가 결국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또한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어머니의 따뜻한 품 속이 아니고 구유에 뉘여 있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한 그 아기가 나중에 자라 성인이 되어서는 나무 위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도 너무나 비통한 일입니다. 이렇게 엄밀히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인생은 모든 것이 다 슬프고 안타깝게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놓이게 된 것은 사관이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또한 그렇게 사관에 있을 곳이 없는 곳에 오게 된 것은 나라가 망해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로마의 황제가 호적을 신고하라고 했고 그래서 이 모든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사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열악하고 누추하고 부족했던 상황이 바로 예수님의 태어나셨을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불쌍할 뿐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예수님의 탄생은 그 의미가 전혀 새로운 것이 됩니다. 바로 예수님이 구유에 놓이신 것은 그전에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그렇게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그러므로 예수님의 나심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이외에 사관에 머무를 곳이 없는 것이나 로마황제의 명으로 호적을 하기 위해서 나사렛에서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왔던 것은 모두 베들레헴 출생이라는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한 온전히 예비되어진 일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마지막에 나무위에 뉘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모든 구원사역을 마치기 위함이셨고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해서 죽으셨을 때 하셨던 마지막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하고자 하셨던 모든 일을 이루신 만족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것이 원래 예수님의 목적이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경이롭고 놀라울 뿐이지만 사실 예수님은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서 이루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이 어쩌면 우리에게는 지극히 무미건조하고 단순하며 평이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사실 예수님의 나심은 매우 극적이고 역동적이고 스펙터클한 일이었습니다. 그속에는 고통과 괴로움과 질고와 역경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속에는 기쁨과 환희와 감격와 영광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의 나심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의 실제적인 의미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결코 그냥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일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그 무엇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서도 우리는 가장 바닥에서부터 올라와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행하셨던 일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행하심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이나 능력이나 영광을 뚝 떨어뜨려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들이시라도 예수님은 모든 고통과 질고와 환난과 어려움을 다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고난을 순종함으로 이기시고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면한 모든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주님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깨닫게 만드십니다. 그렇게 깨닫는 하나님은 사람들의 눈에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깨닫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동행하심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바로 가장 힘들고 괴로울 때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렇게 우리들을 이끄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우리들을 통해서 영광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우리들을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과정은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아기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기묘자, 놀라우신 분이시며, 모사,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분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영존하시는 아버지, 우리를 영원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며, 평강의 왕, 우리에게 주님의 지극한 평안을 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가 가장 힘들고 괴롭고 낙심되고 지칠때 가장 잘 보여집니다. 우리가 세상의 즐거움과 세상의 환상에 빠져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세상의 세파와 어려움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잘 나타납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의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삶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러한 주님이셨기 때문에 강보에 싸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괴로운 삶 그 속으로 오시기 위해서 그렇게 구유에 뉘이신 것입니다.

 

해마다 성탄절을 맞이하지만 가장 기억에 나는 성탄절이 있습니다. 그 기억나는 성탄절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 가장 힘들고 괴로울 때 였을 것입니다. 저도 해마다 성탄절을 보내면서 날마다 힘이 듭니다. 빈 좌석을 보면서 힘듭니다. 개척의 열매가 늘 한결같을 때 힘이 듭니다. 양육의 열매도 결국 떠나는 사람들로 나타날 때 힘이 듭니다. 올 한해도 생각해 봅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내가 무엇을 더 잘해주지 못했는가? 내가 어떻게 했어야 그들이 이 길에 동참했을까? 모든 것이 내 잘못입니다. 내가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절도 더할 나위없이 괴롭습니다. 개척 이전의 교회생활, 그 와글와글하던 성탄절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은 올해에도 여전히 다음으로 미루어야 합니다.

개척교회목사로서의 고민처럼, 우리들은 이런 저런 고민들이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많은 경주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이 삶의 필요들이 있습니다.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삶 깊숙히 찾아오십니다. 아무도 모르는 슬픔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는 고통에 대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 삶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시고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시는 우리의 삶의 빛이 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을 인도하였던 별처럼,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인도하여주십니다. 그 주님을 믿고 따라갈 때에 우리는 마침내 예수님이 오셨던 곳인 하나님 나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 오셨고 마침내 우리의 모든 죄과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우리를 위한 주님의 희생이었습니다. 나무 구유 위에 뉘이고 나무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던 예수님의 삶이 우리 앞에 시작됩니다. 그 모든 일의 시작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애써 인간으로 오셔서 구유에 뉘이시고 우리의 삶에 오셨는데 그 주님을 멀리 해서는 안됩니다. 정말 해야 하는 것은 이 주님을 의지해서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님을 깨닫는 표적입니다. 내가 어려울 때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얼마전 둘째 지인이와 과거에 찍어 놓은 사진을 함께 보았습니다. 엄마가 지인이를 찍어준  장면들이었습니다.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갑자기 지인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그런데 엄마는 어딨어?” “응, 엄마는 너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어”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그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나요?’ 그러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때 너를 안고 있었단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지인이 예방주사를 맞을 때 저는 지인이를 꼭 안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맞아야 하는 주사로 인해서 아파서 두려워서 울때 저는 지인이를 안고 있었고, 우리의 모든 괴로움 속에서 주님은 우리를 안고 계십니다. 이 모든 일을 견디어 내도록 말입니다.

 

우리의 삶의 시작은 계속 진행됩니다. 이 해가 끝나면 다음 해가 찾아올 것입니다. 이 모든 시간 속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유에 오셨던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변화시키시며 그분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그분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라지게 하시며 그분이 우리를 의롭게 만들어 주시기를 소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미 일어난 예수님의 나심과 죽으심으로 인해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 해야할 일입니다.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하나의 표적입니다. 내가 가장 힘들때 나와 함께 하셨던 그 예수님의 표적을 붙들고 나아가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에 온전하게 도착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오시고 우리의 영광을 받으시는 예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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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6;13-22 노아의 방주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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