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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설교] 42눅9; 18-27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분이시다



 

42눅9; 18-27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분이시다_6

 

 2012.7.22.주. 상담수련회,  첫째날 저녁집회

 

*개요   [53희생] {5복음서} <C 분석> [5은혜]-[6결심]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키가 큰지 키가 작은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착한 지 나쁜 지를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이 어떤지를 알고 싶으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내가 어떤 것 같애? 라고 말이지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그렇게 알게된 자신의 모습이 여러분이 스스로 알고 있는 모습과 같을 수도 있고 혹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형성해 나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처럼 다른 존재를 통해서 자신을 알아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너무나 잘 아십니다. 다만 하나님은 인간이 얼마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가를 알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불러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주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예수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으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믿고 따르는 자에게는 예수님의 비밀한 목적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그 일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그 목적에 동참하고 그 일에 연합하는 자들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혼자서도 그 일을 이루실 수 있지만 그일에 연합하게 하심으로써 함께 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예수님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주십니다.

 

조선시대에는 암행어사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왕의 비밀스런 명령을 받고 지방에 내려가 탐관오리를 처벌하는 왕의 신하였습니다. 이러한 암행어사는 혼자서도 그 일을 이룰 수 있지만 때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이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 그를 시험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믿을 만할 때 자신의 정체를 나타내고 그 일에 동참하도록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해 자신이 누군지를 들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정확했습니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그는 정확하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보내어진 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예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습니다. 비로소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자들에게 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를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그분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해주십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을 정복하는 것일까요?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일까요?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일까요? 이 세상을 심판하는 것일까요?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대개 인간을 공격하는 외부인으로 나옵니다. 인간을 돕는 외계인도 물론 있지만 결국에는 인간과는 뭔가 다른 이질적인 존재로 남게 됩니다. 반면, 인간이 이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특별한 목적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런 목적은 결국 인간 수준에서의 목적일 뿐입니다. 너무나 동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때로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좀 달랐습니다. 그분은 이질적인 존재이면서 동질적인 존재이셨습니다. 인간과는 다른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또한 온전한 인간이셨습니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야기하십니다.

“22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주님은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 바 되어 죽임까지 당하게 되지만 죽은 뒤 삼일후에는 살아나게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이유는 세상 죄를 지고 그 죄값을 대신 치르시게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을 마태복음20장에서 주님은 이렇게 설명해주셨습니다.

“마20:28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의 이러한 대속제물이 되시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왜 대속제물이 되셔야 하는가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을 부자되게 하시고, 모든 사람을 건강하게 하시고, 모든 사람을 평안하게 하시는 분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고작 이 세상에서 행하시려는 일이 대속제물이 되시는 것입니까? 대속제물이라는 말은 대신 죄를 갚는 제물이라는 뜻인데, 인간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그 죄를 대신 갚으신다는 말일까요? 또한 그 죄를 안갚으면 어떻게 되길래 주님의 아들이 친히 대신 죽으셔야만 했을까요?

 

 

 

예수님이 대속제물이 되시는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인간이 죄로 인해서 죽는 것을 슬퍼하셨습니다. 죄를 지으면 죽는다고 하셨는데 인간은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죽게 된 인간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죄로 인해 죽는 인간을 대신해서 자신이 죽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죄를 대신 지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셨기에 그 슬픔을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렇게 죽게 된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시는데 예수님은 동참하셨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아십니다. 그 속에는 예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창조된 인간이 죄로 인해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대신 죽으시는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주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인간이 구원을 얻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 사랑이 모든 인간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자연분만으로 태어나는 방법이 있고 제왕절개로 태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왕절개는 기원전 1세기경 로마의 황제인 케사르(시저)가 이 방법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이름붙여졌다고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초기에 제왕절개는 산모의 고통, 내지는 희생이 따랐다고 합니다. 불의의 상황속에서 산모와 아이가 함께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머니의 몸속에서 아이를 꺼내기 위해서 때로는 제대로 마취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수술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은 수술법이 발전되어서 산모가 위험하지 않았지만 과거에는 제왕절개는 산모의 목숨을 희생시키고 태아를 살리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죽으심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를 위해 주님은 죽으셨습니다. 마취도 하나 없이 고통을 모두 느끼시면서 죽으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살았고 구원받았습니다. 그 구원을 감사하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아이가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렇게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살아났습니다. 모두가 다 살아난 것을 기뻐하시면서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을 닮아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을 닮아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주님의 원리는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희생적으로 살면 오히려 그 삶에서 목숨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원하는 대로 살면 오히려 그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희생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주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서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주님의 희생이 담겨져 있습니다.

결국 산모가 죽으면서 살린 그 아기는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그 속에는 산모의 희생적인 삶이 유전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해 새롭게 태어난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이 유전되어 있습니다.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을 기뻐하십니다. 그 죽으심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뻐하십니다. 그 기뻐하심이 하나님 앞에 가면 완전하게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암행어사가 출두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수많은 군졸들을 거느리고 어사는 당당하게 입장합니다. 악을 행한 사람은 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암행어사를 도와서 임금의 명을 수행한 사람들은 칭찬과 상급을 받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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