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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실천] 46고전 3;10-17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46고전 3;10-17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2009.8.9.주일 주일오전/ 7실천 
 
지금까지 우리교회는 10여년 동안 특별한 사역을 해왔습니다. 그 사역은 전도와 양육, 상담과 교육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애초부터 우리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다른 것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전도법이 아닌 다른 전도법, 기존에 존재하는 양육과정이 아닌 다른 양육과정, 교회에 있기는 했지만 구체적이지는 않았던 상담, 그리고 이것저것 잡다하게 교육하는 것이 아닌 집중적이고 목표에 따르는 교육, 이 네가지를 목표로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려고 했던 것은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시행착오와 어려움은 때로 낙심과 절망, 두려움과 죄책감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후원해주시지 않았다면, 도와주시면서 위로해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일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기존에 존재하는 것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셨고 항상 무엇인가가 필요할 때 그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물질이 필요할 때 그 물질을 주셨고 사람이 필요할 때 그 사람을 주셨습니다. 환경이 어려울 때에는 견디게 하셨다가 얼마 후에 환경을 바꾸어주셨고 어려운 상황도 그 때 그 때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일을 하는 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미움을 버리는 법을 배웠고 분노를 삭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절망을 이겨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고 죄책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것은 수치심이었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에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큰 수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것은 무엇인가를 세우는 것이라기 보다는 터를 닦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감정적인 근본이 든든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근본이 얼마나 안정된 상태가 되었는지 이제 우리는 웬만한 일에 미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누군가 실망스럽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입니다. 분노하지도  않습니다. 화낼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니까 분노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적절히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주님 자신이 희생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희생해야 하고 그걸 받아들이면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놓을 줄을 압니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버리니까 아무것도 아무사람도 아무상황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냥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죄책감? 죄책감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을까요? 주님은 다시 우리들을 채워주십니다.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 충만함에 우리의 부족함은 다 잠겨버립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성령의 은혜가 우리를 덮어서 우리를 폄하하고 우리를 정죄하던 모든 것들이 다 안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수치심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도 부끄럽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주의 인도하심에 따라 움직이고 우리 옆에 하나님이 계시는데 무엇이 부끄럽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믿는 도가 우리가 믿는 신이 우리가 믿는 신앙이 그 모든 것이 성령의 동행하심으로 대변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삶속에서 우리에게 불안하기만 했던 모든 근본은 다시금 든든해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굳건한 터가 되었습니다. 교회생활을 통해 우리가 이것을 얻게 되었을 때 우리는 놀라운 터를 닦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10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터를 닦아 두었다고 했을 때 그것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지혜로운 건축자는 터를 잘 닦아 둡니다. 그래서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것입니다. 세우고자 하는 것이 크면 클 수록 터를 닦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높으면 높을 수록 깊이 파서 다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위에 건물이 서는 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감정에 대해 대처해 왔습니다. 우리 자신이 그 감정에 휩쓸렸을때 그 감정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할수록 그 미움을 더욱 커져갔습니다. 우리가 어떤일에 분노하면 할수록 더욱 그 분노로 인한 피해는 커졌습니다. 우리가 절망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은 더욱 절망했고 우리가 두려워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은 더 크게 동요했습니다. 우리가 죄책감으로 인해 괴로워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 힘들어했고 우리가 수치스러워하게 되었을 때에는 모두가 다 수치심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한 그렇게 되는 데에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늘 그런 감정을 새로운 결심으로 대치시켜 주셨습니다. 그런 은혜를 통해 미움이 사랑이 되고, 분노가 희락이 되고, 절망이 화평이 되었습니다. 또한 두려움은 인내가 되었고, 죄책감은 긍휼이 되었으며, 수치심은 양선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완벽한 변화를 통해 진흙덩어리 땅이 굳은 콘크리트가 되었습니다. 푹푹 빠지던 늪과 같은 땅이 어떤 건물을 세워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암벽덩어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변화의 근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마음의 밭을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시고 토지의 형질을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바꾸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것을 고백합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모든 감정을 받아주실 수 있고 우리의 모든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 모든 감정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게 어떤 것인지 아시는 분은 오직 주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감정을 이해하시고 받아주시며 그리고 변화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이후에 중요한 것은 그 위에 무엇을 세우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든든한 결심 위에 무엇을 세우느냐가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지금까지 한 일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지만 앞으로 할 일이 더 의미있는 일입니다. 단지 마음을 다루고 감정을 결심으로 변화시켰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 어떤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간신히 변화된 마음마저 다 엉망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좋은 마음의 터 위에 무엇을 세워야 할까요?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인 구반포에 가면 예전에 현대 백화점이라고 불리던 곳이 있습니다. 버스터미널이나 신세계를 가고자 하거나 잠실방향 올림픽대로로 나가려고 하면  꼭 지나치게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백화점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습니다. 이 백화점 건물이 어떤 회사에 팔려서 명품백화점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는데 그 회사는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모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건물 내부와 외부를 아름답게 치장한 뒤에 백화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투자상황이 여의치 않았는지 몇번이나 개관시기를 늦추다가 우여곡절끝에 개관을 하게 되었는데 딱 한 달간 운영을 하다가 그 회사의 대표는 모든 수익금을 가지고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투자자들은 난리가 났고 이 문제로 백화점은 운영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법정공방이 진행되었고 그곳에 설치된 내 외부 장식들은 수년째 지금도 썩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 왜 그들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망하게 되었을까요?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말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망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이니라”
그 공력은 불이 거쳐간 다음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불이 거쳐가기 전에는 공력이란 확인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날 불이 거쳐가고 나면 공력은 그 진면목을 보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공력은 무엇일까요? 계속 바울의 설명이 진행됩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렇습니다. 불이 거쳐가도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그것은 진짜입니다. 겉으로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인 것 같아도 속으로는 나무나 풀이나 짚이었다면 그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서 불을 견디지 못하고 다 타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남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본질이 드러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또한 겉으로만 금이나 은이나 보석일 뿐만 아니라 속으로도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었다면 불이 거쳐간 뒤에도 여전히 끄덕없을 것입니다. 시련과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는 가가 그 공력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동차가 얼마나 튼튼한지를 충격테스트를 통해 시험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해온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이 바로 불을 통과하는 일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상을 받을 사람과 벌을 받을 사람이 구별되게 됩니다.
 
틀림없이 그런 고비의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충성이나 온유나 절제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유익이나 편안이나 쾌락을 택할 것인가의 선택의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내가 경건이나 덕행이나 우애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인정이나 존경이나 지배를 택할 것인가의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신문기사에서는 그 사장이 수익금을 다 가지고 도망을 갔다는데 그는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것입니다. 충성보다는 유익을, 덕행보다는 편안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도망자가 되었고 남은 자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안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의 선택이 인생의 중요성과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그런 짓을 한다면 그는 예수님을 믿는 이유로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불가운데서 구원을 얻은 것과 같이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것 같으리라”
창피하고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수치스럽고 괴로운 모습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또한 욕구를 선택하지 말고 실천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어떤 사람은 그게 오히려 어떤 하나님의 선을 이루게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을 통해 더 큰 하나님의 선으로 만드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자 영광이고 잘못한 사람이 무엇인가를 도와준 것은 아닙니다. 죄악을 바꾸어 선으로 만드시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심이지 그렇게 한 죄인이 칭찬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판 죄인이고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신 예수님이 놀라우신 것이지 가룟유다가 구원사역에 일조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세워주신 터위에 무엇인가를 세워야만 합니다. 무엇을 세워야 할까요? 또한 무엇을 세우지 말아야 할까요? 여러분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신앙이라는 터위에, 주님이 주신 교회라는 터위에, 주님이 주신 하나님의 나라라는 터위에 여러분의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세우십시오. 그것이 누구를 꼭 의식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실천>의 열매를 맺어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욕구에 지배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실천>의 열매를 맺는다면 불이 거쳐가더라도 남을 것입니다. 그 공력이 남은 사람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진실한 것에 상을 주십니다. 사람 보지 않고 하나님만 생각하고 의지하여 나아가는 신앙에 하나님은 복을 내려주십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욕구>에 빠진다면 불시험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이전으로 다시 되돌아가 버릴 것입니다. 주님이 이루어주셨던 그 단단했던 터는 다시 울퉁불퉁하고 물렁물렁한 것이 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감정에 전혀 동요가 없었는데 그 다음에는 심한 동요가 있을 것입니다. 또 다시 미움과 분노, 절망이 생겨날 것입니다. 다시 두려움과 죄책감, 수치심이 일어날 것입니다. 왜그런가 하면 <욕구>가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이 욕구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유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편안을 추구하도록 합니다. 쾌락을 좋아하고 그 욕구를 채우는데 집착하게 합니다. 인정받고자 하면 할수록 인정을 못받게 되고 존경을 얻으려고 하면 도리어 멸시받을 것입니다. 지배하려고 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것은 사탄처럼 속이는 것입니다. 결코 그것을 얻지 못하지만 계속 추구하게 만듭니다. 목이 말라서 바닷물을 마시게 되면 계속 더 목이 마르게 되는 것처럼 한번 욕구에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는 전부 이러한 욕구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결코 이 욕구를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공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좋은 터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어떤 실천을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다른 영역들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특별히 교회라는 영역에서 우리는 앞으로 중요한 시기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담임목사가 없는 6개월이라는 시간은 힘든 시간일 수 있습니다. 적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시기를 잘 견디고 나면 우리는 크게 성장할 것입니다. 불을 통과한 정제된 금은 더욱 비싸지는 것처럼 우리들의 의미는 더 귀해질 것입니다. 충성과 인내로 다져진다면 우리들은 더욱 반갑고 기쁜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교회를 잘 지켜준 여러분들을 크게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고 그 은혜로 더욱 주님 사랑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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