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신앙비전] 44행 15;1-11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신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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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5;1-11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신앙2_2f

  

 

  

2019. 1. 20. . 주일오후.

  

 

  

*개요:  신앙비전,

  

[]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15: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15: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15: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15: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15: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15: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15: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15: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5: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5: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넬료가 성령충만을 받고 이방인으로써 유대인 성도들과 동일한 그리스도인이 된 사건 이후에 이방인 전도는 봇물이 터졌습니다. 그래서 온 지역에서 이방인 전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그러면서 많은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중의 하나인 안디옥 교회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아주 유명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기준을 어디에 맞추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방인 성도에게도 유대인 성도들과 동일한 기준을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례도 받게 하고 모세의 율법도 그대로 지키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 성도들은 문화적인 이유와 태생적인 이유 때문에 모두 율법의 수준에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너무나 높은 벽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날마다 지기 힘든 무거운 삶의 규칙들을 괴로움과 슬픔으로 지키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기준을 주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죄에 노예가 될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죄라는 것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은혜 생활을 할 수가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을까요어떤 기준이 필요할까요?

  

삶의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가 그들의 고민이었습니다. 유대인 성도들은 어려서부터 전통적으로 해오던 습관이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방인 성도들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으니 어떻게 그들의 삶의 기준을 정할 수 있을지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베드로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애초에 처음으로 이방인에게 성령충만이 임하는데 조력하였고 이후에 물로 세례를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견해는 해박하였고 적절하였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15: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고 모세의 율법을 다 지키게 하는 데에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삶의 첫 번째 기준이 나옵니다.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은 쉽게 말하면 이런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성도로 만들려고 하시는 모양인데, 이래도 그들이 쉽게 성도가 될 수 있을지 한번 해보십시오.’ 또한 이렇게 율법적인 부분에서 스스로 의를 추구하려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시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저는 이러저러한 행위를 했으니 저에게 얼마나 축복을 해주시겠습니까?’

  

유대인 성도들에게는 이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리하게 이방인 성도들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적인 삶의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 것일 뿐이었습니다진정한 삶의 기준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되면 안됩니다.

  

 

  

우리에게도 불과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율법적인 기준들이 있었습니까? 고작 기독교 역사 130년을 헤아리는 우리에게도 바리새인들 못지 않는 제법 많은 율법적인 기준들이 있었습니다. 예배당에서는 남녀가 함께 앉지 못하고, 예배를 드릴 때에는 모자를 쓰지 못하고, 옷차림이 깨끗하지 않으면 안되고, 주일에 돈을 써서는 안되고, 성경책 이외의 책을 읽어서는 안되고, 드럼 등의 소음이 심한 악기는 연주하면 안되고, 등등의 여러 기준들이 있었습니다. 기준들이 세워질 때는 나름대로 오랜 고민과 생각 끝에 이루어졌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기준들은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런 것들이 혹시 우리 자신도 지키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지게 하는 무거운 멍에는 아닌가라는 철저한 반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로 사람들을 판단하면서 혹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고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가 변화되면서 문화가 개방적으로 발전하면서 그런 기준들이 사라졌습니다. 전에는 정말 그런 기준들이 중요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일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들입니까? 이제 우리는 앞으로도 더욱 이 원리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삶의 기준이 되면 안됩니다. 자신도 지지 못할 멍에를 다른 사람에게 지우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아무런 삶의 기준도 주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요? 기준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신앙은 유지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꾸만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게 될 것입니다. 신앙이 있다 해도 삶 속의 죄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그 다음으로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5: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5: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여기서 시므온은 베드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방인들에게 어떤 삶의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아모스서 9 11,12절의 내용이기도 하였습니다.

  

“[]9: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9: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것이 야고보 사도에게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었습니다.

  

“[]15: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5: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5: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라는 부분입니다. 이방인들에게 주어지는 삶의 기준의 목표는 신앙의 유지가 아닙니다. 신앙의 발전도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님을 찾게 만드는 것이 삶의 기준을 갖는 목표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신앙적인 삶의 기준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 기준에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술을 금지합니다. 담배를 피지 않게 합니다. 음란한 것을 접하지 않게 합니다. 남을 때리지 말라고 하고 사기를 치지 말라고 하고 뇌물과 횡령과 기타 위증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분명한 삶의 기준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을 잘 섬기고 목사님의 말을 잘 듣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것은 결코 삶의 기준이 아닙니다.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목사님을 잘 섬기지 않아도 그 말을 잘 듣지 않아도 그 마음을 아프게 해도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성도에게 무거운 짐이 된다면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다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목사님을 무시하고 목사님한테 거짓말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런다면 그것은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그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죄악과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면 그 때에도 여전히 죄의 유혹들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은  온전한 의와 완전한 선이 넘치는 곳입니다. 유혹은 근원인 사탄은 지옥에 있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빨리 천국으로 데려가시지 않고 왜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유혹을 통해 시험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죄의 유혹 속에서 하나님을 선택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죄를 듣거나 보거나 접하거나 행하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하게 됩니다. 죄 가운데 있다면 그 죄를 벗어버리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짓는 것, 그 죄를 얼마나 어떻게 지었는가는 사람마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십보 백보입니다. 다만 어떤 죄이든지 그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진정한 신앙이 형성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세상 속에서 더욱 단련되도록 아직도 우리를 이곳에 두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어떤 유혹에서든지 간에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포기하고 절망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붙들지 않고 포기해 버리면 삶의 수준이 끊임없는 문제로 떨어집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악한 감정과 욕구를 붙들고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그러한 자가 지금 당장은 버리지 못하는 죄를 1년후면 버리고 5년후면 버리고 10년후면 버립니다. 일년 후에도 여전히 동일한 죄를 가지고 있고, 5년후, 10년후에도 똑같이 살아가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지금부터 노력해보십시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언젠가 하나님이 주신 평안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삶의 수준이 결국에는 여러분의 신앙의 수준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의 상급의 수준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삶 속에서 정말 버려야 할 죄와 씨름하십시오. 정말 이겨야 할 삶의 버릇들과 싸우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성숙하고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신앙 생활 속에서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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