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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신앙비전] 45롬16;1-7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한 사람들

45롬16;1-7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한 사람들

2010.7.18.주일오후 [7실천-우애]

1. 사람들은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한 자들을 기억한다.

2008년에 우리 교회 유초등부는 뮤지컬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최지혜 선생님이 아이들을 맡아서 이런 저런 배역을 맡기고 노래연습에 연기연습에 아주 고생을 많이 했었습니다. 3주간의 초단기 준비시간에 ‘최소의 연습으로 최대의 효과를’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주말마다 연습을 해서 정말 성탄절에 그 뮤지컬을 보게 되었을 때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보며 즐거워했었습니다.
그 때 모든 연기와 노래가 끝나고 마지막에 뮤지컬에 참여했던 모든 학생들이 나와서 함께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비록 티격태격하기는 했지만, 비록 미흡하고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몇 주동안 고생한 시간들을 생각하며 모두가 나아와서 관중앞에서 인사를 하고 함께 즐거워했을 때 그 모습을 보는 저도 너무나 뿌듯했었습니다. 아쉽게도 그때 있었던 학생들이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 만큼은 모두가 다 사랑스러웠고 다 즐거움에 넘쳤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함께 수고하고 모두가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정말 마지막에는 그렇게 수고했던 모두가 함께 모여서 서로를 격려하고 박수하고 즐거워하는 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학창시절에 연극이나 발표회 등을 많이 해보았는데 그때마다 가장 마지막의 그 출연했던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인사를 하는 시간이 가장 가슴이 벅찼습니다. 뭔가를 이루었다는 강한 성취감과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과 나누는 정감 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때로는 아웅다웅 하지만 때로는 갈등하고 대립하지만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갈등은 사라지고 함께 이루어낸 목표에 대해서 만족해하면서 더군다나 그 결과가 예상했던 대로 잘 끝나게 되면 마음 가득히 드는 것은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그런 고마움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면 그 일을 함께 하였을 때에 느끼는 보람과 감사와 사랑이 생깁니다.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한 사람들로 인해서 그 기쁨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면 그 기쁨은 가장 최고조가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온전함을 이루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더이상 수고하고 더이상 고생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때까지 함께 했던 모든 이들에 대해서 물론 하나님께도 감사하겠지만 우리들 서로 서로가 감사해할 것입니다. 우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놀라운 일을 이루었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들 스스로도 대견해하며 또한 그때까지 잘 이루도록 도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깊은 감사와 사랑을 갖게 될 것입니다.


2. 사도 바울도 주를 위해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한 자들을 기억하였다.

아직 천국에 이르지 않았지만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런 이유로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을 거명하면서 그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거명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하나 같이 그와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한 사람들입니다. 마치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수상자가 지금까지 고마웠던 사람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처럼 바울은 함께 수고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먼저 그가 말하는 사람은 뵈뵈입니다. 그는 비록 사도바울과 함께 거하고 있지는 않았고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봉사하고 있었지만 그를 위해 간곡히 로마교회에 부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여러 그리스도인들과 또한 자신의 보호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뵈뵈라는 이름은 이곳에서만 등장합니다. 그가 여러 곳에서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렇게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여러 사람들의 보호자가 되어서 그들을 돌보고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만 하고 주려고 하지는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바울도 자신이 받은 도움과 보호를 기억하면서 뵈뵈를 강력하게 로마교회에 천거하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로마교인들은 얼마나 뵈뵈가 사도 바울과 다른 여러 사람을 정성스럽게 도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3.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의 서신 속에서 여러 곳에서 등장합니다. 그들은 바울을 따랐고 함께 동역하였습니다. 그러나 같이 동역했다고 해서 바울이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칭호가 남달랐습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앞서 뵈뵈는 바울과 및 여러 사람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었었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의 목숨을 위해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생겨난 것은 바울과 및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단지 바울 한 사람을 위해 개인적으로 섬겼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이 행한 일은 교회를 위한 희생과 헌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에서도 그 도움을 얻고 그로 인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바울은 로마교회에 부탁하기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교회에도 문안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함께 수고하고 고생한 그들의 교회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베네도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처음 얻게된 열매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인가요? 단지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아시아는 특별히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힘든 곳이었습니다. 이 아시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동아시아가 아니라 마게도냐를 경유하는 소아시아 지역인데 바울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지만 성령이 아시아로 가는 것을 막았고 마게도냐 사람들이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갔기 때문에 아시아에서의 일들은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힘들때 주를 영접했던 자가 바로 에베네도입니다. 힘든 환경일수록 그속에서 고생했던 사람들이 더욱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바울이 이어서 말하고 있는 마리아는 어떻습니까? 그는 로마교회를 위해서도 수고를 많이하였고 그것을 로마교회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문안하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함께 수고하였던 자였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어지는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어떻습니까? 그들은 특별히 바울의 친척이었습니다. 이 부부는 바울과 혈연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친척이 한두명이 아니었을 텐데 특별히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를 언급한 이유는 그들이 바울과 함께 갇혔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그냥 친척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가리켜서 바울은 말하기를 사도들에게도 유명히 여김을 받고 자신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영접하게 되었지만 이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그보다 먼저 주님을 영접했던 자들이고 오히려 바울을 위해서 기도하고 염려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그들을 언급하고 더욱 그들에게 문안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도 역시 하나님과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한 자들을 기억하셨다.

지금까지 바울이 언급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뵈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에베네도, 마리아,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전부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한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의 이름이 기억되고 또한 기억되는 이유가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냥 그럭저럭 한 사람들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묻혀지나가는 것입니다. 기억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더 수고하고 애쓰고 고생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문안하고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기억해주시고 복주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돈을 많이 낸 사람도 아니고 잘생기거나 유력하거나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세상적으로는 부족하고 보잘것 없어보여도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는 유력한 자요 부유한 자요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나 그들의 수고가 귀한 것이었으면 그들이 사도도 아니고 스데반과 같은 일곱 집사도 아니지만 그들의 이름이 이렇게 아름답게 귀한 설명과 함께 성경에 기록되게 되었습니까? 성경이 이렇게 기록될 정도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얼마나 더 귀하게 기록되어 있겠습니까?
시편113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111:5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하나님은 바로 이렇게 수고하고 애쓰는 자들을 기억하십니다.


4. 우리는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하는 자들이 되자.

이러한 하나님의 기억하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떠한 자가 되어야 할까요? 주님께 어떻게 기억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매일 예배시간에 늦는 자들인가요? 매일 예배시간에 조는 자들인가요? 매일 예배시간에 딴 생각하는 자들인가요? 매일 예배시간에 말씀을 판단하는 자들인가요?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전도하고 함께 진심을 다해 예배드리며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함께 사역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에 가든지 누구와 있든지 교회마다 다니면서 의를 행하고 선을 실천하며 사랑을 일으키는 자들이라면 어느 교회에서나 그의 이름을 기억하며 그에게 문안하며 그를 칭찬할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하다 보면 언젠가 이일이 끝이 납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환희의 피날레를 올릴 것입니다. 수고했던 모든 사람들이 앞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인사하며 하나님의 박수를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주님앞에서 최선을 다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됩시다. 하나님과 함께 수고하며 함께 고생하고 함께 영광을 받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이 됩시다. 그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개요 
1. 사람들은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한 자들을 기억한다.
2. 사도 바울도 주를 위해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한 자들을 기억하였다.
3. 하나님도 역시 하나님과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한 자들을 기억하셨다.
4. 우리는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하는 자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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