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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희생] 41막 9; 14-19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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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막 9; 14-19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_1

 

 2012.9.2.주. 주일오전.  주제설교-희생

 

*개요   [53희생] {5복음서} [2분류]-[5은혜] <C분석>

 

 

14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번 달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희생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대개 거창한 주제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이나 애국지사, 주님을 위해 희생한 순교자나 순직자를 생각합니다. 물론 희생을 한 사람들의 서열을 따지자면 그런 분들의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렇지만 희생은 그렇게 특별한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속의 아주 작은 사소한 희생도 희생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삶속에서 그분의 희생은 두말나위 할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희생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건이 전부가 아닙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날을 기점으로 일주일, 혹은 한달을 생각해 봅시다. 아니 넉넉잡고 3개월까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한 모든 희생을 하셨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 한들 예수님의 희생이 고작 3개월 정도의 의미밖에 갖지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희생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시간으로도 제한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희생은 그 희생의 대상인 인간의 존재로부터 시작됩니다.

 

 

1.    사람들은 벙어리 귀신들린 아들을 놓고 변론하고 있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큰 무리가 둘린 곳으로 오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과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내려오는 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변화산에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해서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큰 무리가 둘러있고 서기관들이 서로 변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변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14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그렇게 보면 아마 그들은 중요한 신학적 문제때문에 토론을 하는구나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또는 의미있는 성경해석때문에 토론을 하는가라고 예상을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벙어리 귀신 들린 한 아들을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전혀 학구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의 아버지는 제자들과 서기관들에 대해서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기 위해 18절을 보십시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그들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지금 이 아들은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하여 가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것이 귀신때문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제자들은 내어쫓을 수가 없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만 토론할 뿐이었습니다. 그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일들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녀들은 거꾸러지고,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하여 가지만 부모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또한 제자들도 이 문제를 해결해 내지 못합니다. 말씀에 정통한 교사들도 배움의 학식은 많이 있지만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해 내야 할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전보다 더욱 문제는 늘어나지만 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불러야 한다’구요. 그 사람은 정신과 의사이고, 정신병원 원장이고, 경찰이고, 기도원 원장입니다. 과연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될까요? 해결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 해결은 결코 그 자녀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원한대로의 해결은 아닌 것입니다.

 

 

2.    그들은 변론만 하고 있느라 구체적인 문제의 해결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서 변론만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변론을 하느라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일까요? 문제 속에서 정말 원한 것은 이런 상황이 다만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 혹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변론을 잘하는지를 확인하는 것, 혹은 지금 여기서는 대책이 없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해서 끝내는 것이지 않았을까요? 그런 것이 아니었다면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딱 한 사람이 있습니다. 서기관들에게는 모르겠지만 또한 부모님에게도 모르겠지만 제자들에게는 정말 필요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통해서 온 세계가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래서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예수님께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없었을 때에는 자기들끼리 변론하고 자기들끼리 토론하며 자기들끼리 해결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었고,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닙니다. 15절을 보십시오.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심히 놀라며’라는 말에 주목해 주십시오. 예수님이 오신 것이 다행스럽고 기쁜 것이 아니라, 두렵고 놀란 상황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의지하거나 기다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들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오시니까 뭔가를 잘못한 사람처럼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심히 놀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녀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 사람들은 심히 놀랍니다. 그런 것은 우리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런 것까지 예수님께 맡길 수 있느냐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사실 그런 문제들은 예수님을 의지해야 해결되는 것이라고 할 때에 심히 놀라게 됩니다. 진짜로 그럴 수도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런 건 교육자나 전문가나 의사나 경찰을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런 문제는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원래 주님을 의지했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왜 자신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느냐고 물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일은 그들 스스로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삶 속의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 ‘사람’을 부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을 부를 때에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고 간구할 때에 주님은 그 길을 열어 주십니다.

 

 

3.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참으시면서 문제를 해결하신다. 

 

이제 귀신들린 아들의 문제에 대해서 물으시고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부모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제자들은 서기관들과 더불어 변론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사람들은 모여서 구경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은 놀랍게 해결해 주십니다. 그 때 하신 말씀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19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주님이 하신 말씀은 그를 주님께로 데려오는 것에 대해서 귀찮아하거나 짜증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그를 주님께로 데려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애초에 사람들이 모여있는데로 오시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물어보시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게로 데려오라고 하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상기해 보십시오. 그들은 먼저 그 아들을 주님께로 데려온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그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결코 싫어하셔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라고 하셨을까요? 주님의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그들에 대해서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 믿음이 없어서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지 못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은 애초에 주님 없이 문제를 그때 그때 잘 알아서 해결하기를 바라셨다면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주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사실 정 반대입니다. 바로 문제가 있을 때, 그 때 그 때마다  주님을 끊임없이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의지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대한 신뢰가 없었고, 예수님께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 자신없고 믿음없는 태도의 결정적 증거는 그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가 한 말이었습니다.

“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이 뭔가를 하실 수도 있지만 하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은 단지 그 아버지의 생각만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했고 서기관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겨난 그 순간에 주님을 의지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런 의미에서 주님의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들아!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어 왔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아 왔는지를 얼마나 더 알아야 하겠느냐!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나는 너희의 구원자이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하셨고, 오래전부터 우리를 참아오셨습니다. 주님은 한번도 우리를 버리신 적도 없고 그냥 놔두신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불순종하고 또 어리석게 행동하고 또 죄를 짓고 또 의심하고 또 믿음을 버리면서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주님의 희생은 다함이 없습니다. 그침이 없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으며 여전히 우리를 참고 계십니다. 우리의 그 모든 죄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문제를 가지고 와야 합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결코 해결되지 않는 변론을 거듭하지 말고, 그러면서 더욱 악화되어지는 괴로움으로 인해 도리어 주님을 원망하지 말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우리를 참으시며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하자.

 

올림픽이 끝난 뒤 조용히 시작한 또 하나의 올림픽이 있습니다. 바로 ‘패럴림픽’이라는 장애인 올림픽 대회입니다. 여기에 출전하시는 분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다양한 인생역정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학생때 망막색소변성으로 시력을 잃게 되었지만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유도선수, 17세에 척수염으로 척수장애가 되었지만 장애인 조정을 접하고 대회에 임하는 조정선수, 휠체어 펜싱선수, 지적장애가 있는 수영선수 등등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지만 정상인들보다도 더욱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회에 출전합니다. 하지만 그들 만이 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옆에서 묵묵히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옆에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가족이 있습니다. 친구가 있습니다. 선후배가 있습니다. 이웃이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더많은 감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더욱 큰 감사의 조건은 우리에게는 더욱 온전하시고 희생하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그런 감사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고, 그러면 그럴 수록 더욱 깨어지며 넘어지고 상처받는 모습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참으십니다. 그 모든 수고를 감당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주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이 얼마나 더 우리와 함께 하시고, 얼마나 더 우리를 참으셔야 우리가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들임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역사하심이 우리 삶속에 있을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서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참고 계십니다. 그 주님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더욱 믿고 의지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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