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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용서] 51골 1;12-20 우리를 아들의 나라로 인도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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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골 1;12-20 우리를 아들의 나라로 인도하심_1

2011.2.6. 주일오전예배, 하나님과의 화목
 
[골]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골]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골]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우리는 음력 설을 잘 마치고 이자리에 다시 함께 모였습니다. 음력 설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교적인 의미는 오늘날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서 생겨나는 친지와 가족간의 의미가 더욱 부각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마다 음력 설에 부여하는 의미는 각자 달라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설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어떤 사람은 설은 가족, 친지가 함께 모이는 날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고, 어떤 사람은 고향 땅을 방문하고 고향사람들을 만나는 날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고, 또 어떤 사람은 유원지로 스키장으로 혹은 해외로 여행을 하면서 즐기는 날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 하나만 봐도 이렇게 각자의 해석과 의미부여가 다른데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도 역시 많은 해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은 하나님 나라에 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으며 살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신앙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자격증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신앙은 어떤 의미입니까? 어떤 의미가 가장 큽니까?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이나 여러분 자신에 대한 것입니까?

설에는 어떤 인격적인 존재가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의 문화이며 사회적인 관습일 뿐입니다. 그래서 설을 조상제례로 생각하던 아니면 가족 친지와의 관계로 생각하던 아니면 지역향우모임이건 아니면 여가활용이건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쫓아다니면서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다릅니다. 신앙에는 인격적인 존재가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앙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바로잡고자 하십니다. 스스로의 생각으로 신앙이 오해되고 곡해되고 변질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불러 모으셔서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앙에 대한 많은 잘못된 영향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이단들이 존재하면서 신앙을 곡해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말을 만들고 꼬아서 정상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신앙을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혹은 복을 받기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잘못된 메시지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책을 통해, 혹은 인터넷이나 설교방송과 같은 매중매체를 통해 신앙을 듣고 보고 말하는 것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나는 김목사님 파다, 나는 이목사님 파다, 나는 박목사님 파다라는 이상한 현상을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신앙이 행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무 것도 행하지 못하면서 그저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이 말하는 것이 신앙인 것으로 오해시키고 있습니다.

또 다른 안좋은 영향력은 신앙을 단순히 윤리교육으로 격하시켜버리는 것입니다. 날마다 모여서 행하는 것은 윤리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는 방법들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이렇게 하고 교회에서는 이렇게 하고 세상에서는 이렇게 하라는 식의 행동만 강조하다 보니까 정작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보다 더 안좋은 것은 타협하는 것입니다. 다 그렇고 그렇게 사는 거지, 왜 꼭 규칙을 지키고 정식을 따라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쁜 사람도 많고 문제도 많은 것이 당연하고 오히려 교회가 너무 깨끗하고 문제가 없으면 그게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안좋은 이유는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점도 없고 흠도 없이 깨끗한 교회와 성도들을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점이 있으면 어떻고 흠이 있으면 어떠냐는 식의 자포자기의 마음은 결국 하나님마저도 멀리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안좋은 영향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많은 유혹을 받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이런 유혹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신학을 공부했어도 문제에 빠집니다. 또한 교회사역을 아무리 많이 했어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지금 목회를 하고 있는 저도 이 모든 영향들 속에서 강렬한 유혹을 느끼는데 여러분은 오죽 더 하겠습니까? 그렇게 유혹에 굴복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게 될 때에 우리의 마음이 느슨하게 될 때에 우리의 삶에 많은 허점이 생겨날 때에 사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변의 수많은 도구를 사용하여 우리의 신앙을 변질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이 원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신앙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욱 우리 자신을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복음의 분명한 내용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앙을 각자 이해하지 않기를 원하시고 그 올바른 의미를 잘 받아들이고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따라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주님을 잘 따라 나가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업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잘 따라 나가서 주님의 기업을 얻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 12절을 보십시오.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 아버지는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일에 대해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도의 기업의 한 부분을 얻게 하신 것이 놀라운 일이며 참 감사한 일이고 그 일을 우리가 깨닫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현신애 권사님(1993년 사망)이라는 분을 아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대구에서 신유은사로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1만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 안수기도를 받고 병고침을 받고 그 일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숨을 거두고 영혼이 천국에 갔습니다. 가서보니 자신은 수많은 환자들을 고쳐주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다가 갔으므로 자신의 집이 크게 지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개집같은 초라한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기를 모르느냐고 물어보았답니다. 예수님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신실하게 잘 섬기고 병고치는 능력으로 수많은 사람을 고쳐주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왜 예수님께서 저를 모르십니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내 능력을 가지고 네 장사를 하였지 언제 나에게 영광을 돌리고 나의 일을 하였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살면서 호화롭게 살았으니 이곳에서 초라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하셨답니다. 또한 그가 한국의 유명한 몇 분의 목사님들을 거명하면서 이 분들은 모르시느냐고 물어보았는데 대부분을 모른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 놀라서 한번만 회개할 기회를 달라고 예수님께 사정을 하여 허락을 받아 되살아나게 되었답니다.
마침 시신은 칠성판에 뉘워둔 채로 미국에 살던 아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입관을 미루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살아나서는 그동안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헌금한 것을 모아둔 것이 30억이 있었는데 그것을 전액 북한 선교원에 헌금하고 예수님께 물어보았을 때 모른다고 하셨던 그 목사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예수님께서 모른다고 하시더라고 회개하라고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믿으시건 믿지 않으시건 간에, 중요한 것은 현신애 권사님같은 능력있는 사람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했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나님 나라에서 그 기업의 한 부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이 영광을 누리고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으로 평안하게 살고 있었을 때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하나님은 그 기업을 누릴 기회를 주십니다. 그 기업은 하나님 나라에서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업은 오늘날 교회에서 얻게 됩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십니다. 그 나라에 봉사하고 연합하며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이미 천국의 그림자인 이 교회에서 성도의 기업의 한 부분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속에서 그 기업의 한 부분을 누리지 못한다면 하나님 나라에서도 그 기업을 누리지 못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다들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될 것인데 그래서 누가 어떤 상급을 받을 지 알게 될 텐데 그 상급이 부조리하겠습니까? 얼마나 공정하며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만하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생활에 소홀한 사람은 천국생활에서도 소홀히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생활에 충성한 사람은 천국생활에서도 충성스럽게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하고자 할 때에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에게 기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들에게 성도의 기업에 대한 사모함이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은 어느 정도 믿음의 수준에 이른 사람이라야 바라볼 수 있는 소망입니다. 백날 이 기업에 대한 소망을 말해도 어떤 사람들은 전혀 관심이 없는 이유는 그런 수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종 저한테는 부동산에서 땅 좀 보라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저는 그런 전화를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먹고 살기도 바쁜데 자꾸 땅을 사라고 하니 택도 없는 것이지요. 땅을 살 돈이 없어서 땅을 사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땅을 사라는 이야기가 짜증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땅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이 오르기도 하고 요긴하게 팔기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부럽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형편이 되지 않으니까 그게 땅이건 집이건 그냥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도 좀 여건이 되면 땅이나 집을 좀 사고 싶다는 마음은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의 기업과 그 나라에 대한 상급에 대해서 소망하는 마음이 없다면 일단은 접어두셔도 될 것 같습니다. 듣기 싫으면 듣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그러나 다만 나중에라도 신앙이 좀 성장하게 되었다면 믿음이 좀 커지게 되었다면 그 나라의 기업과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보십시오. 그러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땅값이나 집값은 떨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기업과 그 상급은 절대 떨어지지 않고 이생과 내생에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럴 수준이 안되는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앙의 의미는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13,1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하나님은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의 수준에 맞게끔 말씀해주십니다. 우리가 상급이나 기업이나 이런 것들에 별로 소망이 없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 가져야 하는 소망은 바로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그분이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 나라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 나라라고 해도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기억한다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특별히 본문 골로새서 1장 13절에서 아들의 나라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그 다음 구절 14절에서 우리의 구속받음의 이유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구속함을 받을 수 있었나요? 우리가 어떻게 해서 흑암의 권세의 나라에서 건짐을 받아 아들의 나라로 옮겨가게 되었나요? 우리가 어떻게 구속 곧 죄사함을 받게 되었나요? 바로 그 아들 안에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아들의 나라로 가게 된 것이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에 죄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있어서 아들의 나라로 가게 되는 것,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죄사함을 받는 것, 이것을 어떻게 비유할 수 있을까요? 이번 설에 우리는 어디든지 다녀왔습니다. 멀리 지방에서부터 가까이 서울 근교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들었지만 잘 갔다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중 누구도 자기 발로 걸어서 갔다 온 사람은 없습니다. 다 자동차나, 버스나,열차나, 전철이나 비행기를 타고 갔다 왔습니다(요즘은 전철타고 귀향하는 사람도 있다네요).
그리스도는 이렇게 아들의 나라라는 어떤 장소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되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자동차를 거부하면 안됩니다. 버스를 싫어하면 안됩니다. 열차나 전철이나 비행기를 안타려고 하면 결국 아무 데도 갈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나라로 갈 수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구속 곧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다는 것은 더욱 인격적인 개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방법으로서 자동차나 버스같은 교통편의 의미를 갖는다면, 또한 인격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함께 움직이는 가족의 의미를 갖습니다. 자동차, 버스, 열차 등을 이용할 때 그 모든 비용은 누가 감당합니까? 함께 움직일 때에 자녀들은 부모님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직접 돈을 내지 않습니다. 기름값, 식사비, 통행료 기타 등등의 모든 비용을 자녀들은 부모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전부 무료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비용을 자녀가 내려고 한다고 해 보십시오. 부모님은 오히려 역정을 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원하는 것은 자녀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관계를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시는 이유, 우리의 죄값을 대신 갚아주시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의 모든 죄악이 용서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 값을 얻고자 할 때 주님은 언제든지 그 값을 치뤄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 늘 무료로 값없이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행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인가를 노력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고자 하는 진실함이 있을 때 우리는 모든 무한한 죄사함과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설은 끝이 났습니다. 설의 의미를 무엇으로 생각하던 설은 다 끝이 났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왔습니다. 더불어 2월도 시작되었습니다. 짧지만 중요한 이 2월의 삶을 우리는 다시 살아내야만 합니다. 또한 이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계속 진행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입니다. 설이야 어떻게 생각하던 그것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신앙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줍니다. 정말 성도의 기업의 한 부분을 사모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의 나라로 가려고 하거나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고자 하는지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매우 중대한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꾸만 교회를 도우려고 할 때에 사람을 보게 됩니다. 사람에 의해 실망하게 됩니다. 사람에 의해 실족하게 됩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생활을 하게 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며 쓰러지고 넘어지고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자동차 안에 있는 한 다 운전자가 맡아서 주관할 것입니다. 우리가 버스 안에 있으면 버스 운전기사가 다 알아서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께서 알아서 우리를 그분의 나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감놔라 배놔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련히 다 알아서 하시지 않겠습니까?

신앙의 의미를 다시금 기억하고 온전히 하나님만 따라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 교회 중 이 교회를 다니는 동안 여러분의 성도로서의 기업이 풍성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를 다니는 동안 많은 기업과 상급을 얻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그렇지 못하더라도 아들의 나라, 예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사라진지 오랩니다. 저도 제 설교 속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개와 죄사함의 원리가 빠지지는 않았나 두렵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저도 어떤 세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요. 다시 기본으로 돌아와서 우리의 목적지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죄사함이 필수적임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그 죄사함을 얻게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함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한달 동안 골로새서 1장 12절부터 20절까지를 계속해서 보려고 합니다. 다음 주에는 우리를 구원하신 이러한 예수님의 능력이 어떻게 만물속에 충만히 나타나 있는지를 이어서 살펴볼 것입니다. 이 본문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개요 {4서신서} <1적용> <3시점> [0복음]~[1영역] [5-4용서]
1.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신앙의 의미를 오해하지 않고 잘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2. 주님은 그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의 가치를 이해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3. 또한 주님은 그것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4. 우리도 자신의 믿음 수준에서 하나님을 믿고 따라 나가는 자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