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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존경] 43요 1; 1-5 어두움이 빛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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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1-5 어두움이 빛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_1

  

 

  

2021. 10. 3. . 주일오전.

  

 

  

*개요: 요한복음에서의 믿음의 소원, 5분석적해석, 44존경-54용서, 5서신서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이 처음 알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에만 국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충만하심과 영원하심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던 시간 만으로 존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창조자로 태초부터 계셨고 구원자로 미래에 오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며 날마다 새롭고 항상 충만한 순간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분을 이해하고자 하면 그 내용은 얼마나 풍성하며 얼마나 무한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단순히 인간으로만 생각한다면 그분의 삶은 중단되었고 그분의 이야기와 영광은 모두 멈춰져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미 있었던 삶에 대한 이해도 떨어지고 그 이상의 모습에 대한 이해도 불가능해집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으로서의 모습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을 날마다 새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영광과 존귀하심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요한복음에서 나타난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사복음서의 기능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보여주며 마가복음은 종으로서의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누가복음은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을 보여주며 요한복음은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이 사복음서를 통한 이해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종종 사람을 글로만 볼 때가 있습니다. 또한 목소리로만 볼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영상으로만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나면 지금까지 글로, 목소리로 영상으로 봤던 느낌이랑 전혀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더 실제적이고 더 놀랍고 더 온전한 모습은 직접 만날 때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만나는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이 더욱 실제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또한 사람을 한 번만 만나지 않고 여러 번 만나고 오래 만나며 깊이 알고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더 새롭고 더 친밀하게 알게 됩니다. 겉으로만 아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요한복음에서 만나는 예수님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거쳐서 다시 만나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매우 친밀하게 느껴집니다. 그럴 때 우리 속에 믿음의 소원이 생깁니다.

  

성경은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닙니다. 66권의 책들이 합쳐진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 중에 복음서만 4권이 있습니다. 4권의 저자와 문체와 관점이 모두 다르지만 동일하게 바라보는 대상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을 더 새롭고 더 풍성한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우리는 요한복음에서의 믿음의 소원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 특별히 요한복음 11절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이전에 성경에서 태초를 이야기하는 것은 창세기 뿐이었지만 이제 요한복음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태초를 이야기하는 성경은 없습니다. 요한복음은 그만큼 창세기적인 권위를 가지고 창조자이셨던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증거를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창조자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요한이 무슨 근거로 말씀이신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썼으나 사람에 의해서 기록된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기록하신 내용이 됩니다. 단순히 인간이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예수님은 태초에  말씀(로고스) 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창조의 하나님이셨습니다. 2,3절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말씀이자 창조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는데 만물은 전부 그에 의해서 지은 바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전부 예수님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창조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예수님의 창조하심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러한 말씀을 볼 때 예수님은 모든 만물을 전부 만드신 놀라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아는 것은 예수님을 올바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창조에 동참하신 이유는 그분이 생명이시고 빛이셨기 때문입니다.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은 모든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이셨기 때문에 모든 창조에 동참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예수님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예수님 보다 더 크고 높아서 예수님을 간단하고 단순하며 더 작은 존재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자신이 이해하고 판단하며 분석 가능한 분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은 때로 거부되고 부정되며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됩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되심도 창조자되심도 누리지 못합니다. 자신이 예수님보다 더 높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반대로 예수님보다 자신이 낮은 것이었고 더 큰 어둠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더 큰 어둠을 바라보면서 생명과 빛으로 돌이킬 생각이 없을 때 생명과 빛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것으로 나아올 수도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5절 말씀에 잘 나타납니다.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빛이 어둠에 비치고 있지만 어둠이 그 빛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비치고 빛을 깨달으면 그것은 이미 어둠이 아닙니다. 빛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빛을 깨닫지 못하는 어둠은 그 빛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빛이 어둠에 비치고 있지만 계속 어둠을 지향할 때 어둠은 여전히 어둠일 수 밖에 없습니다. 빛의 반대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성도가 빛 가운데 산다는 것은 빛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가 계속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면 그것은 어둠을 지향하고 빛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빛은 비치고 있지만 그 빛을 누릴 수 없습니다. 밖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지만 두꺼운 커튼을 치고 어둠 속에 있는 것이며 빛이 닿지 않는 지하 어둠 속에 사는 것이며 빛 속에 있지만 눈을 단단히 가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빛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비로소 빛을 깨달을 수 있고 생명되신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예수님 보다 높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보다 더 높기 때문에 그분께 의지하고 그분께 배우고자 하며 그분을 따르고자 할 때 비로소 빛과 생명과 창조와 말씀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한 시각장애인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학생시절에 어느 날 갑자기 방안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온 세상이 캄캄해지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검사와 치료를 해보았지만 시신경이 손상되었고 그것을 회복할 수가 없어서 결국에는 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분은 그 암흑과 어둠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맹인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맹인학교에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따르고 찾으라는 선생님의 권면을 들으면서 그 예수님을 따라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 좌절과 절망의 시간이 아니라 소망과 열정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어둠에 거하지 않고 빛 가운데로 나아왔던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총신대학교 총장인 이재성 총장님입니다. 그분이 노회세미나에 오셔서 그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우리도 빛 가운데로 나아갈 믿음의 소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빛되신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여전히 어둠 속에 살아갈 뿐입니다. 날이 어두워서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햇빛이 쨍쨍해도 사람들의 마음은 괴롭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빛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그 생명을 마음 속에 가질 때에 창조자이신 예수님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창조자이신 그 예수님을 통해 말씀이신 주님을 마음에 새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 속에 놀라운 빛이 비쳐집니다.

  

빛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빛이 비쳐지고 있지만 그 빛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그 빛을 바라보고 빛 가운데로 나아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예수님은 말씀이요 창조의 하나님이시요 생명이요 빛이셨다.

  

2. 하지만 예수님을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어둠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3.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면 빛과 생명과 창조와 말씀을 발견할 수 있다.

  

4. 요한복음에서의 믿음의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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