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절망] 18욥 1; 19-22 하나님께 대해서 원망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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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19-22 하나님께 대해서 원망하지 않은 이유_1

  

 

  

2021. 1. 17. . 주일오전.

  

 

  

*개요: 욥기에서의 믿음의 소원, 6통찰적해석, 33절망, 51계획

  

 

  

[]1:18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19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1: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기를 통해서 우리는 고난의 의미와 삶 속에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성경을 읽는다고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이 내 마음에 심겨지고 그 속에 역할이 나타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의 효과가 삶 속에 나타납니다. 표면적 신앙생활이 안좋은 것은 그런 것이 전혀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은 외적인 모습을 구성하는 장식품일 뿐이지 내적인 모습을 만들어 내는 근원적인 힘으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자전거에는 휘발유가 필요없습니다. 그냥 자신의 힘으로 페달을 밟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동차에는 휘발유가 필요합니다. 그 석유의 힘으로 엔진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삶 속에 하나님의 말씀은 휘발유와 같습니다. 그 말씀이 단순히 장식품으로 남아있지 않도록 우리 자신의 삶 속에 집어 넣어야만 합니다. 내면적인 신앙생활은 바로 그런 일들이 이루어지게 하는 본질적인 마음의 변화를 이루게 합니다.

  

욥은 고통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내면적인 신앙생활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욥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해서 원망하지 않고 온전한 신앙을 계속 유지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십시오.

  

“[]1:18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19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이미 욥은 바로 이전에 소, 나귀, , 낙타와 각각 그 무리들을 돌보고 있던 종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스바사람들이 와서 욥의 소, 나귀, 종들을 죽였고 하나님의 불이 떨어져 양과 종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갈대아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낙타와 종들을 죽였습니다. 물질과 인부들의 상실이 얼마나 큰 상처와 고통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으로 어려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뒤이어 들어온 소식은 큰 바람이 와서 자녀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욥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시험하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대로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셨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가져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욥의 반응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 모든 축복이 그를 통해서 나타내시려는 그의 신앙의 가치보다 더 중요하다면 하나님은 결코 그에게 주셨던 축복을 거두어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나타내시려는 그의 진실함과 온전한 신앙의 가치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다른 것들을 다 치우셨습니다.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주변에 크레인과 가림막과 기둥과 난간 등을 설치합니다. 그 다음에 건물이 다 완성이 되면 모든 다른 것들을 다 제거합니다. 왜냐하면 건물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건물 이외의 다른 것들은 전부 건물을 만들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진짜는 그 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모든 것들을 다 없애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공급하심의 뜻 속에서 욥에게 주셨던 모든 것은 전부 욥의 신앙과 그 신실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신앙과 신실함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치우시는데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때 욥의 신실함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통은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비교해 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욥에게 일어난 일들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고통과 좌절과 슬픔과 절망이 되겠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놀라우신 하나님의 계획과 가치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진정한 내면의 신앙생활은 바로 그럴 때 생겨납니다.

  

정말 우리도 욥과 같은 모든 어려움을 한 번에 다 겪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 하나라도 경험할 때는 있을 것입니다. , 나귀, , 낙타 처럼 우리의 소유물 중 하나라도 손해보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또는 함께 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안좋은 일이 생길 때도 언젠가 한번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속에서 어떤 뜻을 이루기 원하시는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놀라운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할 때에 표면적 신앙생활이 끝나고 내면적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서 당면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욥은 이전에 자녀들의 생일잔치를 치루면서 혹시라도 하나님께 욕이 되지는 않았을까를 걱정하면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모두 사망한 그때에 그는 다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1: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그는 자신의 겉옷을 찢었고 머리털을 밀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쓰러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고백을 하였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사람을 의식하며 예배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감정에 북받쳐서 예배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진실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았기에 그 하나님을 찬양하며 찬송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외면적인 모습만 있어서 사탄은 그의 진실성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내면적인 모습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모든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이유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렸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남아있는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다 사라져 버려서 완전히 절망하고 자포자기하면서 하나님도 버릴 줄 알았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찬송을 드리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대한 진실함을 나타내었습니다. 그의 모습이 귀하고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그를 덮고 있던 것들을 다 제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진실함이 삶 속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를 표현하는 마지막 절은 그의 승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의 이러한 승리를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욥은 표면적인 신앙생활에서 내면적인 신앙생활로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내면적인 신앙생활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인가 물질적인 것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더 본질적이고 가치있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가치는 하나님의 진정한 가치를 받아들일 때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지으셨고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 온전한 가치를 받아들일 때에 그것을 가져가시고 거두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신양의 세계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더욱 온전히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생명이 전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약속해 주셨습니다그 귀한 구원과 생명을 이 세상에서의 편리와 안락함과 바꿔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질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위해서 고통을 감수할 수 있고 그럴 때 가치가 드러나는 법입니다. 세상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가치를 포기한다면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 뿐입니다.

  

진정한 성도의 믿음의 모습은 하나님의 귀하심을 받아들일 때 나타납니다. 욥이 발견한 여호와의 이름의 찬송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그 상황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귀하심입니다. 그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가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욥이 상실과 아픔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찬송하는 모습이 있었기에 그의 믿음이 큰 믿음이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사탄의 미혹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얻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와 나귀와 양과 낙타와 종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것을 얻지 못하는 어려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자녀는 다 잘되고 부강하고 강성할 때 우리의 자녀가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서 얻는 괴로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탄의 시험은 그때도 나타납니다.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요? 얻지 못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얻으리라고 기대한 것을 얻지 못했을 때 과연 계속 하나님을 붙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면서 이미 얻은 것에 감사할 때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내면적인 신앙생활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진정으로 바라보는 자들의 가치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영광과 존귀하심을 기억하고 그 넘치는 은혜를 힘입어 늘 주님의 다스리심과 역사하심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풍성함이 넘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삶에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우리의 삶에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존재하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있다.

  

2. 욥의 삶에 일어난 고통인 재산의 상실과 자녀의 사망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결과였다.

  

3.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할 때 원망하며 좌절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할 때 자기 중심의 신앙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성장할 수 있다.  

  

4. 상실이나 혹은 결핍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바라보는 성도가 되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1-01-17 (일) 20:23 1개월전
*소감

-하나님의 영광의 가치를 생각하게 됨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목표
-예배드릴 수 있음이 감사함

-설교에 랙이 많이 걸려서 실시간에 잘 못듣고 다시 보기로 듣겠다
-욥기는 항상 어렵고 힘들다, 욥의 삶이 하나님 중심이었던 것을 본받아야 겠다. 나의 행복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지 말자
-내면적인 신앙생활을 위하여 마음의 틀, 그릇을 조성해 주시도록 기도해야겠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겠다,

-가치와 본질의 문제, 물질적인 가치가 아닌 진정한 가치, 물질의 영역을 넘어선 생명과 구원이 본질임을 깨달음,
-신앙생활에서 내면적인 모습을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세상을 떠나 살지 않고서는,
-세상적인 가치의 유혹이 있어서 힘들기는 하다, 노력을 해야겠다,
-욥의 고백, 굉장한 사람이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가족의 화합의 가치가 생각난다,
-다 잃었을 때는 죽음 밖에 남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것을 넘어서 신앙의 성장을 보며 감명받았음, 환난을 통해 믿음의 실체가 나타나는 구나, 하나님을 의지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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