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직장] 43눅 1; 67-75 예수님을 예언할 때 비로소 말하게 된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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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1; 67-75 예수님을 예언할 때 비로소 말하게 된 제사장_1

  

 

  

2019. 12. 15. . 주일오전.

  

 

  

*개요:  직장에 대한 성령님의 동행, 55동행, 1적용, 5복음서

  

[]1: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1: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1: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1: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1: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1: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1:74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1: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성탄이 가까이 오면서 자주 만나게 되는 문구가 있는데 그것은 ‘Merry Christ max’라는 말입니다. 성탄장식에서 혹은 연말분위기를 나타내는 실내장식 등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글입니다. 그럴 때 그 의미는 즐거운 그리스도의 기념일이라는 뜻입니다. 이 연말은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절기가 되었습니다. 마치 불교의 연등행사에 일반 사람들이 싫든 좋든 그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기독교의 성탄에 일반 사람들은 좋든 싫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기념해야 하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 직장인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직장인의 모습을 생각해 볼 때 그의 모습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직장인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직장인은 침묵하는 직장인입니다. 아무런 말을 못하는 직장인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직장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밝힌다든지 혹은 상사로서 다른 부하직원에게 기독교를 강요한다든지 하면 그것은 정말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말하는 자신을 강조하는 것 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예수님을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까요?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말하는 것은 아닌 정말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다른 사람들도 불편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진심으로 예수님을 말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예수님의 탄생 전후로 여러 사람들이 나오고 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섬기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예수님을 정말 좋은 방법으로 말하는 모습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은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사가랴 제사장입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엘리사벳이었습니다. 이들 세례 요한의 부모님은 원래 나이가 많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자녀를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사가랴는 그것을 듣고 그 일에 대해서 의심을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말했습니다.

  

“[]1:20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그는 자신에게 노년에 아들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해준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믿음이 없었을 때 아예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그 불신앙의 말을 계속 해서 더 큰 불신을 퍼트리게 되지 않도록 하심이었습니다. 이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믿음을 더욱 나타내고 확장시켜서 도움이 되는 일이었지만 믿음이 없고 불신과 의심이 있을 때에는 아예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실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말을 할 바에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악한 말을 계속 퍼트리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별로 좋지 않은 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더욱 불신과 의심을 가중시킬 것이고 자기 자신에게는 그 불신과 의심을 가중시키는 죄를 짓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직장 속에서 그리스도인 직장인으로서 살아갈 때에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기도 하고 말할 것이 없거나 말할 능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직장 속에서는 침묵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 기쁨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즐거움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과 수치심에 사로잡혀서 말하지 않을 때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말하고 싶지 않아서 말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말할 수 없어서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복음에 대해서 말못하는 사람입니다.

  

사가랴가 자신의 듣고 본 바를 말할 수 없었을 때 얼마나 답답해했을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의 말못하는 상태는 그 자신이 스스로 자취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 속에서 고민하고 안타까워하며 기다렸습니다. 자신이 다시 말하게 될 날을 기다렸습니다. 이미 아기는 잉태되었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지만 그는 그 아기가 출산하게 될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에게는 바로 자신이 예언에서 들었던 그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믿지 못하였을 때에는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그리스도인 직장인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과 감사가 무엇이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려는지를 알지 못하면 말못하는 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런 가능성 자체를 신뢰할 수 없었지만 아들의 출산이 가까와졌을 때에는 더 큰 확신과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수치와 불편함도 커졌습니다. 그 이유는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믿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직장에서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자신의 의사로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 마침내 오랫동안 말못하는 자로 살던 사가랴의 입이 열리고 말이 유창하게 된 때가 찾아왔습니다. 그 때는 아이가 태어난 때가 아닙니다. 또한 아이를 안고 기뻐하는 때도 아닙니다. 그 때는 사람들이 그 아들에 대해서 물을 때 그가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을 때였습니다. 다음 구절을 보십시오.

  

“[]1:62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

  

[]1:63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1: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난 지 8일 후에 할례를 받았고 아기의 이름을 짓고자 했을 때 아버지에게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어떤 이름을 짓기를 원하느냐고 했습니다. 그 때까지도 사가랴는 여전히 말을 못했습니다.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서판을 달라고 했고 그 서판에 요한이라고 썼습니다. 자신의 의사를 글로 분명하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 이름은 천사가 자신에게 알려준 바로 그 이름이었습니다사가랴는 이 표현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과 확신을 사람들에게 나타냈습니다. 그가 노년에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고 그 아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자임을 분명하게 믿고 그 믿음을 밝혔던 것입니다. 바로 그럴 때 그의 혀가 풀리면서 말을 할 수 있었고 말하는 능력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진심으로 자신의 구주이심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심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을 때 비로소 우리의 입은 열리고 진정한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또한 자신이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종교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주일마다 종교생활을 하며 가족이 다 믿고 그래서 믿게 되었다고 말하고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진정한 예수님을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에게 행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역사하실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말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 결코 억지나 강요나 무리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사랑하면서 하는 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인들이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상사 중의 하나에는 종교를 강요하는 상사가 있습니다. 억지로 교회를 나가게 하는 사장님이나 억지로 예배를 드리게 하는 상급자 등은 정말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경우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관점과 생각과 판단만이 중요하게 되어서 결국에는 구원을 전하기 보다는 구원을 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가랴 제사장이 보여주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오랜 시간 침묵하다가 했던 말은 예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1: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1: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예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돌보시고 속량하시고 구원의 뿔을 주신 것입니다. 그 구원의 뿔이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구원의 뿔이 되신 예수님을 따를 때 그것이 바로 사가랴가 고백하는 예수님께 대한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할 때 직장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치 석판을 내밀 때에 요한이라고 쓰는 것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님의 의미를 말할 때 진정한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 시작됩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받은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모든 원수와 대적과 환란의 괴로움 속에서 구원하시는 손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가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1: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이는 다시 말해서 자신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고백하고 그 구원자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원수와 환란으로부터 구원함을 받으리라는 것을 믿고 의지하는 삶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의 현재의 삶 속에서의 구원을 깨달았을 때 미래에 오실 예수님의 구원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의 입에서 예수님을 의지한다는 말이 없고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 없으면 우리에게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나 소망이 있는 것일까요? 사가랴는 제사장으로서 그 말을 했습니다. 제사장의 위치와 제사장의 신분 속에서 아들에게 이름을 사가랴가 아닌 요한이라고 해야 한다고 대답하면서 터져나온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주님께 대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전도의 말은 둘째이고 나의 신앙의 고백이 첫째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먼저 신앙인의 자리에 설 때 마지막 세 번째 고백이 나옵니다.

  

“[]1: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1: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1:74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1: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그것은 약속대로 일을 이루시는 것이며 원수의 손에서 건짐을 받고 그 행하시는 일 속에서 더욱 주님을 두려움 없이 섬기게 되는 모습입니다. 결국 직장에서 주님을 말한다는 것은 자신이 주님을 섬긴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이 주님을 섬기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주님을 섬기는 고백과 삶의 실천이 진정한 예수님께 대한 말입니다.

  

북한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전에 그곳에서 직업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 사회와 그 국민과 그 정권을 위해서 봉사하는 자였지만 이제 대한민국에 왔을 때에는 이 사회와 이 국민과 이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가 됩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세상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자가 될 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가 생깁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자신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리라는 예언을 의심하였다가 말을 못하게 된 사가랴 제사장이 그 아들의 태어남과 이름을 지어달라는 말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찬양하고 섬기고 있습니다앞으로 30년 후에 일어날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위치에서 주님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모든 모습 속에서 믿음의 눈을 떠서 예수님을 말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주님을 고백하고 의지하며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이 비로소 지금까지의 모든 말못했던 의심과 불신이 사라진 새롭게 변화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 오셨고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더욱 온전히 따르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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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 86봉사
43요 21;7-14 식사를 차려주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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