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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동행] 66계 1: 10-20 주의 날에 인자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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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계 1: 10-20 주의 날에 인자를 만남_1



2011.9.18.주, 주일오전, [5-6동행]

*개요 {6서신서} [5은혜]-[6결심]

 

장님이 코끼리 만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장님이 촉각만으로 코끼리를 만지고 나서 코끼리는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맞는 것도 아닌 이유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코끼리는 장님의 이해 그 이상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유초등부 학생이 자신은 한번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으니 하나님은 말씀하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나, 중고등부 학생이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으니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나, 청년부 성도가 하나님은 내 길을 열어주시지 않았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다고 말하는 것이나, 장년부 성도가 하나님이 내게 이런 고통을 주셨으니 하나님은 원래 무자비하신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노년부 성도가 이제와서 하나님이 내게 무슨 계획을 가지고 계시겠는가 라고 말하는 것이 다 장님이 자신의 경험에 의지해서 코끼리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장님은 코끼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까요? 그 비결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경험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코끼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짧았고 그 이상의 지식과 경험과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코끼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시작은 이것입니다. 내 이해의 차원으로 하나님을 끌어 들이려는 것이 아니라 내 이해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안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사도 요한에게서 나타났습니다. 그는 밧모섬에 유배를 당하여 갇혀있었는데 그곳은 전혀 은혜를 받을 만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주일날에 그는 성령에 감동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감동함 속에서 그는 새로운 청각과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9..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와같은 요한의 이해를 뛰어넘는, 그의 예상을 벗어나는 나타나심 속에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오셨습니다. 그런 곳에서 그런 시간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음을 받아들였을 때 요한은 자신에게 나타나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이후부터 온전한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이시간 예수님을 볼 수 없으리라고 지레 포기하는 동안 예수님은 지나갑니다. 이 예배가 내게 별다른 의미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동안 가장 의미있는 시간이 지나갑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이러한 한계를 뛰어 넘을 때 여러분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연히 듣는 음악에 마음을 빼앗기는 때가 있습니다. 우연히 본 영화나 드라마에 마음이 사로잡히는 때가 있습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그 사람의 말에 마음이 움직이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은 우연히 일어난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매우 필연적이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필연이었습니다. 그 필연의 이유를 우리는 11절에서 보게 됩니다.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사도 요한은 이제 자신에게 나타나실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전에 왜 이런 환상을 보게 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듣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필연의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은 요한이 자신의 보는 환상을 기록해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들도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다. 장님이 처음에 코끼리를 만지는 경험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처음 예수님을 경험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렇게 만났던 이유는 나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나로 인해서 하나님은 우리 가정이 복을 받고 우리 친구가 복음을 듣고 우리 교회가 성장하며 세워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위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는데 그것은 단지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돌아가서 여전히 왕의 신하로 살아가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로 인해서 에디오피아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의미와 목표를 가지고 그 백성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과연 요한에게 나타난 예수님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사도 요한은 자기가 본 예수님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붉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 속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배경과 그분의 의복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머리와 털과 눈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발과 음성을 보았습니다. 그의 손과 입과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 세세한 내용 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에 그가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있으면 있지 그분의 머리가 어떻고 의복이 어떻고 눈과 발과 음성과 손과 입과 얼굴이 어떻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분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예수님께 대해서 갖는 관심이란 그분의 생각과 마음과 뜻과 목표와 계획이 아니라 그분을 통해 내 삶에 어떤 유익이나 편안이나 쾌락을 얻을 수 있을까에 관한 것들 뿐입니다. 그래서 그분 자신에 대한 설명과 묘사에는 관심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에게 선언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선언하십니다. 자신이 누구이시며 왜 그분을 주목해야 하며 그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지를 말씀하십니다.
“17..가라사대 두려워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주님은 요한에게 자신을 처음과 나중되신 분으로 나타내십니다. 전에 죽었었지만 지금은 살아있는 자로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분으로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고 하였습니다. 놀라운 영광으로 주님은 다시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바로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이 스스로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시대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만큼 힘든 시대입니다.

여전히 가정의 문제는 산적하고 교회는 변화되지 않으며 우리의 학교와 직장과 사회는 어려움과 부조리와 문제 투성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은 이전보다 더욱 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어디에서 소망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바로 그때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살아있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전에 죽으셨었지만 이제는 세세토록 살아계셔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시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시고 회복시키신다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사도 요한은 비록 죄수요 유배를 당했으며 복음전파에 대한 어떠한 소망도 발견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 순간에 사도 요한은 가장 진실하며 가장 역동적이며 가장 소명에 불타서 주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을 받아 적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매주 이렇게 드리는 예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각할지 모릅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매번 상황은 그대로일뿐이라고 절망할지 모릅니다.

저는 매번 이러한 절망과 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한주에도 이렇게 절망해서 교회를 나가지 않겠다는 믿음을 버리겠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절망과 씨름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제 자신의 절망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절망이 가장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 우리는 소망을 발견합니다. 왠만한 절망에서는 사소한 절망에서는 그런 소망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정말 절박한 절망 속에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극도의 절망 속에서 놀라운 소망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그 밑바닥에서 살고 싶다는 본질적인 마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외칠 수 있습니다. 살려주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그 소망 속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십니다. 그 모습은 오른 손에는 일곱 별을 잡으시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서 서 계시는 모습입니다.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주님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주님의 비밀을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일곱 별을 붙드시는 이유이며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신 이유였습니다. 주님은 멀리 우주 밖에서 우리를 쳐다 보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을 바라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 지 어떤 일을 이루실 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 놀라운 일을 사모하면서 현재 여러분의 상황에 얽매이지 마시고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십시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곳은 밧모라 하는 섬이었고 그 자신은 죄수로 얽매인 상황이었지만 가장 놀라운 경험을 하였던 것처럼 여러분이 있는 곳이 가장 어렵고 힘든 곳일찌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가장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경험을 사모하면서 오늘도 내일도 주님을 바라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만난 사람이 있고, 원하던 아기를 얻은 사람이 있으며, 기다리던 왕위를 누리게 된 사람이 있고, 사모하던 성령의 충만을 얻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결코 절망하지 마시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을 붙드시고 계시는 주님이 여러분을 놀라운 은혜의 자리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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